화승총의 화려한 등장 1525년 파비아 전투 무기들

화승총은 이미 13세기에 등장했으나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휘관들의 불신을 받고 있었다. 화약과 총알을 장전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짧은 사정거리에 정확도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525년 2월 24일 파비아 전투에서 화승총은 승패를 뒤엎는 중요한 구실을 함으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파비아 전투는 프랑스의 왕 프랑수와 1세와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1세가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승부다. 파비아는 이탈리아 밀라노 남쪽 3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프랑스는 프랑스 기병대와 독일, 스위스 용병등 2만 8천명의 병력으로 6천명의 수비대가 있는 파비아시를 포위하려고 했다.

이에 맞서 합스부르크가는 2만 3천명의 부대를 동원해 프랑스군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플레이트 아머(판금갑옷)을 쓴 채 전장을 누비는 8천명의 프랑스 기사병들은 합스부르크가의 주력인 스페인 보병들에게는 위협적이었다.

합스부르크가는  아르퀘부스(arquebus : 아퀘부스라고 발음하는 이도 있음)라고 불리는 일종의 화승총을 지닌 3천명의 부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가의 부대를 통솔하는 페르디난도 프란체스코 데 아발로스 후작(이름 더럽게 기네.)은 이 부대에게 프랑스 기병대의 후미를 교란시키라는 임무를 맡긴다.



 -아르퀘부스로 무장한 중장보병


화승총 부대는 일제히 진격해 후미에서 지휘관의 통솔에 따른  수십차례의 일제사격으로 프랑스 기병대를 흩어버리는데 성공한다. 프랑스군은 기병과 보병이 서로 돕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2만 8천의 병사들은 거의 전멸당하고 프랑스왕  프랑수와 1세는 포로로 잡힌 후 마드리드로 호송되어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이탈리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이렇듯 각 나라에는 안 좋은 역사의 추억이 많습니다. 삼전도비가 치욕적이라며 훼손한 무개념이 생각나네요.)

이로인해 각 국가는 화승총병을 집중 육성하게 되며 강력한 스페인 화승총부대의 전술은 머나먼 동방의 일본에까지 건너가 전수되기에 이른다.....


 

덧글

  • 날거북이 2007/03/28 19:37 #

    http://ultan.egloos.com/193516 에스파냐 국왕의 정예부대 - 테르시오(Tercios)에 화승총과 머스킷, 그리고 그를 보조하는 부대에 대한 얘기가 더 있다.
  • 금린어 2007/10/09 15:18 #

    첨부사진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와 박차에서 알 수 있듯 중장보병이 아니라 화기로 무장한 기병입니다. 초기 용기병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돌격할때와 퇴각할때 일제사격을 가함으로써 보다 중무장한 적 병사들과 교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결과적으로 중기병의 끝을 장식한 녀석들입니다. 보병들은 보다 단순한 무장을 했습니다.
  • 날거북이 2007/10/09 16:08 #

    금린어 / 그렇군요. 제가 좀 더 상세히 봐야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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