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주장을 위해 모순된 발언을 하다.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서론은 접어두고 단숨에 말하겠다. 이 글에서 보인 박노자 교수의 태도는 그가 거부하는 단순한 민족주의 관점 만큼이나 황당하다. 그의 입장은 역사를 바라볼 때 투쟁적인 민족주의 관점을 버리라는 건데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을 주장하기 위해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가 요즘 한겨레21에 실어 놓은 '고구려와 중국은 철천지 원수였나'가 그렇다.


고구려는 한족(漢族)하고만 투쟁을 벌인게 아니다.

박노자는 이 글을 통해 한(韓)민족의 테두리에서만 고구려를 바라보는 것을 은근히 견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 상대를 한족(漢族)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고구려 역사가 한인(漢人)들과의 전쟁 기록으로 가득찬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박노자의 글中

물론 선비족도 언급했지만 이는 철저히 구분해 놓았다.

선비(鮮卑) 등 요동의 비중국계 인구도 고구려가 노획하는 등 - 박노자의 글中


박노자는 우리 역사를 한(韓)민족의 굴레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국의 역사는 한(漢)민족의 역사로만 보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선비족도 엄연히 중국 역사의 일부다.

박노자가 이 글에서 언급한 연나라, 수나라, 북제를 보자.

우선 고국양왕과 전쟁을 벌인 연나라(박노자는 연나라라고 했는데 전국시대 연나라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후연이라고 해야한다.)는
선비족 모용씨가 건국한 국가이다.

수나라 역시 왕실의 뿌리는 선비족이다.

북제 역시 선비족에 의해 건국이 되었다.


박노자는 지금 코메디를 하는건가? 아마 박노자가 애써 우길 건덕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저들이 선비족에 의해 건국이 된건 아는데 북제와 수나라는 한화(漢化)가 되지 않았느냐."

물론 박노자가 이렇게 말하진 않았으니 이를 두고 시비를 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것도 말이 되지 않는 핑계라는 걸 다들 알 것이다.


고구려에 노획된 중국인의 후손만 문제인가?

당시 요동정세에서 인구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박노자가 얘기한 인구 확보 전쟁은 별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박노자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구려에 유입된 중국인의 후손들이 끼친 영향만 언급하고 있다. 박노자가 늘상 강조하듯이 당시 정세에서 민족간의 이것저것을 따지지 않고 상호 교류에 입각해 장점을 받아 들였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중국'을 오늘날의 중국으로 보면 안 된다. 한족(漢族)의 나라도 아니었고 통일시기에도 하나의 수장이 영도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돌아간 완전한 중앙집권 국가도 아니었다. 심지어 군현제가 시작된 한(漢)나라 때나 당나라때도 그러했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제후들에게는 때로 왕명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기도 해서 거의 반자치 형식으로 운영되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어디 한(漢)족의 문화만 전파되었는가? 특히 그 당시 요동은 여러 문화의 흐름이 빠른 곳이었다. 박노자는 한자에 漢이 들어간다고 한족의 것으로만 보는가?

이와 같은 한자 보급이나 서적 교류는 중국인의 귀화,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 없이 가능했겠는가? - 박노자의 글中

한문은 동아시의 문화의 기반이니만큼 민족을 따지지 않고(박노자가 잘 알듯이) 공통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한국의 편협한 민족주의 타파를 부르짖는 박노자 선생께서 이 논리를 깨기 위해 다른 민족주의를 들이밀다니 참 희안한 일이다.

박노자의 말처럼  역사쓰기란 현재적 선택의 문제가 맞고, 굳이 고구려사에서 중국과의 투쟁사만 부각시켜 볼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박노자의 시각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며 내용도 틀렸으며 평소 자신의 입장과도 모순되어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