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총통 무기들

국조오례의 서례 1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국조오례의 서례 2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2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3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4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5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6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7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기류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_8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차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국조오례의 서례 2권, 병기도설, 화차 설명, 문종 1년(1451)에 제작된 이동식 로켓 발사대, 신기전 1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총통틀 탑재,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국조오례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1
국조오례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2
별황자총통, 1609년, 육군박물관 소장
사전총통, 15세기, 육군박물관 소장
삼총통, 육군박물관 소장
세총통, 15세기, 보물 제854호, 육군박물관 소장
승자총통, 1581년, 육군박물관 소장
승자총통, 육군박물관 소장
신기전, 육군박물관 소장
신제총통,-육군박물관-소장
일총통, 14-15세기, 최무선이 개발한 화살전으로 사격했던 총통, 육군박물관 소장
중신기전 설명
한국고화포,-15세기-16세기

화차 모형, 국조오례의 서례에서 복원, 문종 1년(1451)에 제작된 이동식 로켓 발사대, 신기전 1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총통틀 탑재, 육군박물관 소장




출처 : http://www.kast.or.kr/hall/presenter/choimuseon/museon_main06.html


세종 118권, 29년( 1447 정묘 / 명 정통(正統) 12년) 11월 15일 갑진 1번째기사
총통을 연습할 때와 총통을 들고 임전할 때의 대오에 대해 유시하다





평안도·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유시하기를,

“총통(銃筒)을 쏘는 군사가 모두 마땅히 장약(藏藥)하는 기술을 익히 알아야 하겠지마는, 화약(火藥)을 허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마음과 같이 연습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사람마다 그 기술을 모두 알게 할까. 이것이 한스러운 일이다.

매양 5인으로 오(伍)를 만들어서, 한 오(伍) 안에 한 사람이 장약(藏藥)하는 것을 알고, 네 사람이 쏘게 하여 한 사람이 기민하게 장약하는 것이 가할 것이다. 이총통(二銃筒)·삼총통(三銃筒)·팔전 총통(八箭銃筒)·사전 총통(四箭銃筒)·세총통(細銃筒) 다섯 가지 총통(銃筒)을 한 오(伍)의 사람이 섞어서 싸 가지면 급할 즈음에 전(箭)과 격목(檄木)의 대소와 장약(藏藥)의 많고 적은 것을 반드시 분변하지 못하고 혼동하여 쓸 것이니, 모름지기 한 오(伍)의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마다 똑같은 총통을 가지어 적(敵)에 임할 때뿐 아니라, 평상시의 연습에도 또한 서로 섞여서는 안 된다. 마땅히 사람의 힘의 강하고 약한 것을 따라서 마땅한 총통(銃筒)으로 가르치어 미리 그 뜻을 정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인으로 오(伍)를 만드는 것도 또한 가하다. 혹은 말하기를, ‘총통군(銃筒軍)은 총통만 가질 것이 아니라, 혹은 궁시(弓矢)도 띠고, 혹은 도검(刀劍)도 가지는 것도 가하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이 말이 그럴듯하나, 만일 궁시(弓矢)와 도검(刀劍)를 가진다면 가지는 총통(銃筒)의 수가 적어지니, 마땅히 활과 칼을 쓰지 말고 총통을 많이 가지게 하는 것이 가하다.’ 한다. 두 말이 모두 근리(近理)하다.

또 격목(檄木)·철퇴(鐵椎)·철전(鐵箭)·화약(火藥)·화심(火心)·양약요자(量藥凹子)·장화기(藏火器) 등물이 모두 한 사람의 몸에 가지는 것인데, 그 중에 화약·화심·장화기는 한 곳에 가질 수 없으니, 모름지기 화약·화심을 한 편에 차고 장화기는 또 한 편에 차게 하고, 또 잡물 여러가지를 한 사람이 모두 가지면 무거워서 다니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염려이다.

들으니 중국 조정에서 북으로 정벌할 때에 우리 나라의 말을 써서 총통 여러가지를 실었으니, 지금도 역시 이 제도에 모방하여 한 오(伍) 안에 장약하는 한 사람이 한 필을 거느리고 장약하는 여러가지를 싣고, 또 장약한 총통을 많이 싣고, 네 사람은 혹시 궁시(弓矢)를 띠고 혹은 도검(刀劍)을 가지고 앞줄에 있어 쏘고 장약하는 자는 쏘는 대로 주는 것이 이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다. 다만 본국 마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계책이 행하여질는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또 다섯 가지 총통의 군사는 다섯 빛깔의 기로 구별하여 투구에 꽂고, 총통의 호령을 주장하는 자가 오색(五色) 기를 세우고 뜻에 따라 지휘하면, 영(令)을 내리기도 편하고 적에 응하는 것도 쉬울 것이다. 총통을 연습할 때나 적에 임할 때에 불을 약심(藥心)에 가깝게 하면 심히 염려되니, 마땅히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이상 여러 조목의 가부와 가감(加減)을 감련관(監鍊官)으로 더불어 다시 더 적당한 것을 상탁(商度)하여 행하라.”

선조 35권, 26년( 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2월 24일 기유 6번째기사
평양 수복 후에 여러 장수가 경성으로 모인 일과 행주 산성의 대첩에 대한 기록





처음에 평양이 회복되자 여러 장수들이 많이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중국군이 개성부에 진주하자 우리 나라 장수들은 차례로 전진시켜 함께 기각(掎角)의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전라도 순찰사 권율은 그의 군사 4천 명을 반으로 갈라 절도사 선거이(宣居怡)로 하여금 거느리고 양천강(陽川江) 언덕에 진을 치게 하고, 자신은 정병 2천 3백 명을 거느리고 수원(水原)의 독성(禿城)으로부터 고양군(高陽郡) 행주(幸州)의 성산(城山)으로 옮겨 진을 쳤다. 12일 새벽에 척후(斥候)가 계속해서 보고하기를 ‘적이 좌우익으로 나뉘어 각각 홍기(紅旗)와 백기를 들고 홍제원(弘濟院)으로부터 행주를 향해 오고 있다.’ 하였다. 권율이 즉시 군중에 동요하지 말라는 영을 내리고 대(臺)에 올라 바라보니 5리쯤 떨어진 들판에 적의 무리가 가득했다. 선봉 1백여 기가 점점 접근해 오더니 조금 있자 1만여 기병이 들을 뒤덮고 와서 일시에 포위하고 바로 돌격해 왔다. 우리 군사들은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크고 작은 승자총통(勝字銃筒)및 진천뢰(震天雷)·지신포(紙神砲)·대중발화(大中發火) 등 각종 화기를 연달아 쏘았는데도 물러가지 않고, 부대를 나누어 번갈아 진격했다. 묘시(卯時)로부터 유시(酉時)에 이르도록 세 번 진격하고 세 번 물러갔는데 적의 죽은 자는 수십 명이었고 부상한 자도 백여 명이 되었다. 적이 마른 풀에 불을 붙여 바람을 이용, 성을 불태우면 성중에서는 물을 부어 이것을 껐다. 처음에 승군(僧軍)으로 하여금 서북쪽에 있는 자성(子城)의 한 쪽을 지키게 했는데 이때에 승군이 조금 물러나자 적들이 고함을 치면서 몰려 들어오니 군중이 흉흉하였다. 권율이 칼을 빼어 들고 독전하자 여러 장수들이 죽기로써 힘껏 싸우니 적은 포위를 풀었다. 적의 시체를 네 곳에 모으고 마른 풀을 쌓아 놓고 불을 질렀는데 시체 타는 냄새가 10리까지 뻗쳤다. 아군이 남은 시체를 거두었는데 참획한 것이 1백 30여 급이었다.

당시 중국군이 왕래하며 순찰하다가 이 전쟁이 있은 것을 알았다. 이튿날 사대수(査大受)는 자기의 편장(編將)을 보내어 접전 때의 상황을 물었고 예물을 보내어 치하하였다. 그 뒤 3월에 경략(經略) 송응창(宋應昌)은 우리 나라에 자문(咨文)을 보냈는데 ‘왜놈들이 조선 왕국을 함몰시키니 삼도(三都)와 모든 군현들이 소문만 듣고도 무너졌으며, 의병을 불러모아 대란을 평정하고 국토을 지키어 회복을 꾀한 한 사람의 영웅 걸사도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술이나 마시며 시나 짓고 기생이나 끼고 산에 노닐어 치란(治亂)을 모르는 체하며 나라의 존망은 관심 밖에 붙이는 자가 있다고 하였다. 이런 말까지 있으니 왕국에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오직 전라도 관찰사 권율만은 외로운 성을 굳게 지키면서 많은 백성들을 불러 모아 여러 차례 기계(奇計)를 써서 가끔 대적을 물리쳤고 근일에는 또 모래 자루를 곡식인 것처럼 만들어 왜적을 유인, 이들을 죽였으니 이는 실로 왕국의 위기시의 충신이며 나라를 중흥시킨 명장이다. 본부에서는 심히 가상하게 여겨 장차 별도로 구제(具題)를 행하려 한다. 지금 홍단견(紅段絹) 4단(端), 백은(白銀) 50냥을 본관에서 상으로 주어 충성과 용기를 권장한다. 왕은 벼슬을 더하여 본국의 막료와 재신을 고무하라.’는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