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의 역사 - 3 그들의 역사


인간들이 우리를 가축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잡아먹을 대상에서  타고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이 점점 든 것 같아.




-당나귀 타기(donkey seat)기원전 1350년 경, 볼로냐 고고학 박물관 소장


 아니 그런데 말 이야기라고 해놓고서는 왠 당나귀 타기? 게다가 부조 속의 짐승은 분명 당나귀가 아닌 말이란 말이다!

 사실 승마 초기에는 저렇게 말엉덩이에 앉는게 정석이었답니다. 저걸 당나귀 타기라고 한 이유는 지금도 당나귀를 탈때는 저렇게 타거나 가운데로 타야하기 때문이야.

-조선 초기 화원 화가였던 이상좌의 기려도(騎驢圖)



말처럼 앞쪽으로 타면 당나귀가 힘들어 한다군. 이런 단계에서 제대로 된 승마법을 인간들이 터득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게 되지.

-테라코타 판으로 현대에 만든 고대인들의 당나귀 타기의 정석. 떨어질까 무서운 듯 한손으로는 말의 꼬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왜 우리를 타고 다니게 된 걸까? 좀 더 편하기 위해? 전쟁을 위해?

아마도 약간의 과시욕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싶어. 말을 타는 건 정말 숙련된 자만이 할 수 있었거든. 그냥 타기만 했다가는 말 뒷발에 차여 크게 다칠 수도 있지. 다라서 말을 타는 행위보다는 말을 다루고 모는 행동이 선행되고 그러다보니 타게 되었다고 봐. 그래도 떨어지지 않도록 말을 타고 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래서 등자가 나오기 전 기수는 The Reluctant Rider(얻기 힘든 기수) 였지.

하여간 인간들의 승마법은 느리지만 조금씩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어.


-기원전 700년경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기병


어때? 제법 말의 중간까지 와 있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타는데 5백년의 세월이 걸렸다니!

하지만 곧 말의 앞부분에 무게 중심을 가하면서 고삐로 말의 행동 방향을 좀 더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게 되었지.


-스키티아(지금의 남러시아) 기병, 스키타이족은 최초의 기마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말의 앞부분 타는 승마법이냐 조금 그 아래로 위치해 타는 승마법이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안장에 약간의 이동사항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래와 같은 모양새를 정석으로 여기지.


-스페인 기마학교 1984년. 사람의 엉덩이가 말의 중앙에 위치해 있지만 등자의 위치로 인해 실제 대부분의 무게는 말의 앞 근육에 가해진다.


하지만 등자 등장 이전에는 기수가 발을 늘어트리고 있다가 말이 달리면 양발로 말의 배를 꾹 움켜야하는 동작을 반복해야했으므로...... 말을 오래 탄 기수들은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나중에는 걸음도 못 걷는 병에 걸리기도 했어. 그런 형편에 위에서 무거운 무기를 잘못 휘둘렀다가는 낙마하기 쉽상이었지. 그렇기에 기병이 휘두르는 무기는 가벼운 창이나 위에서 쏘는 활이 주종을 이루었어. 그것도 아니면 말로 사람을 덮치는 거지 뭐. 따라서 이 당시의 기병은 무서운 존재이긴 했지만 그 희소성과 불편함으로 인해 무시무시한 존재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에로스와 켄타우로스


기마민족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이미지를 만들었을까. 위키백과에 나온 켄타우로스의 얘기를 여기에 소개하자면

-켄타우로스는 대초원에 무리를 지어 사는데, 대부분 성질이 난폭하고 음탕하다. 55살까지 살 수 있으나 대부분 40살이 되면 죽는이유는 피살되거나 전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난폭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술을 너무 좋아하여 종종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라고 하네. 이건 완전 비방수준이야.. 아마 이건 그리스 세력권을 괴롭힌 기마민족에 대한 묘사겠지. 이들은 말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말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그 모습이 켄타우로스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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