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코끼리의 역사 - 5 그들의 역사

코끼리 Vs 코끼리 라피아 전투(Battle of Raphia)

기마 대 기마의 싸움은 많이 있지만 코끼리 대 코끼리의 싸움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게 라피아 전투가 다입니다. 제 추측으로는 인도에서는 이런 코끼리대 코끼리의 전투가 더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코끼리를 이용한 공성전은 있었지만 인도에서 코끼리대 코끼리의 전투가 있었는지는 정보추적을 못하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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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아(현재의 가자지구로 추정) 전투(또는 4차 시리아전투라고도 한다)는 BC217년 인더스강에서 시리아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셀레우코스 왕조(알렉산더의 부장인 셀레우코스 1세가세운 나라)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역시 알렉산더의 부장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왕조)를 공격하면서 벌어졌다. 두 헬레니즘 국가는 각기 전투 코끼리를 동원했는데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내세운 코끼리가 고향이 인도코끼리였는지 아프리카산 코끼리인지는 여전히 알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전투를 덩치작은 인도코끼리대 덩치 큰 아프리카 코끼리의 대결로 단언하고 보고 있다. 하긴 그게 좀 더 흥미진진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오늘날 명맥이 끊긴 와중에 이는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여기에 대해 잘 알고 계신분의 조언 부탁드립니다.)

더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코끼리(필자는 여기에 의구심을 던지지만 편의상 이렇게 부른다.)는 인도코끼리보다 덩치가 작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덩치가 큰 현존 동아프리카 코끼리는 사람이 길들이기가 거의 어렵고 풀만 먹는다 뿐이지 성질은 맹수에 가깝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안티오쿠스3세의 영도아래 정복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6만2천의 보명과 6천의 기병, 103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동원했다. 이에 맞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는 는 7만명의 보명, 6천의 기병 73마리의 전투코끼리를 동원했다고 한다. 이 전투의 기록은 구약성서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Polybius BC203~ 120)의 기록에 의거하고 있으며 병력은 그러한 기록에 의거하여 추정된 것이다.

전투는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승리로 끝났지만 결정적인 승리는 되지 못했다. 이 싸움의 승패는 긴창을 든 보병간의 대결로 결정되었다. 코끼리간의 대결은 코끼리 숫자에서 우세했던 셀레우코스왕조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폴리비우스는 코끼리간의 전투가 치열한 육박전으로 전개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양편이 모두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코끼리간의 전투가 벌어진다는 법은 없다. 자신의 강한 것으로 상대의 약한 곳을 치려 들기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서로 상대방의 측면을 돌파하려다가 벌어진 전투임을 예상할 수 있다. 폴리비우스가 단순히 생동감 있는 전투를 묘사하기 위해 구라를 쳤을 과장을 했을수도 있지만 일단은 믿어보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덧글

  • 두비 2008/03/22 00:34 #

    흥미로운 기획입니다. @,@
  • 날거북이 2008/03/22 08:11 #

    두비 님/넵, 한편으로는 용두사미가 안 되기 위해 고심중입니다. 0_0
  • 꼬깔 2008/03/22 13:55 #

    흥미롭네요. :) 사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아시아 코끼리가 덩치는 작지만 뇌의 용적이 더 크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코끼리는 거의 지금의 탱크였겠네요. 지못미 코끼리... 주말 잘 보내세요.
  • 날거북이 2008/03/22 14:19 #

    꼬깔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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