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 전투(Battle of Kosovo : 1389년)가 뭐길래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그림)Petar Radicevic의 1984년 작 Battle of Kosovo

여기서 말하는 코소보 전투는 1389년 6월에 벌어진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세르비아 연합군과의 전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전투를 얘기하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코소보 사태의 원인이 바로 이 전투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이라고 소개되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코소보 전투에 대해 소개한 국내의 백과사전 정보는 어딘지 모르게 안 맞습니다. 무라드 1세가 전투 전에 암살당했다고 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투 후에 세르비아가 멸망하고 비잔틴 제국이 포위되었다는 말을 적어 놓더군요. 이 부분에서는 1448년 투르크와 헝가리군이 코소보에서 벌인 2차 전투를 1차 전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코소보 전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16세기 투르크 역사가 네슈리의 기록이 있으나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서방측 기록에 의존한 것이 더 많습니다. 위키토피아 같은 경우에도 그렇지요.(위키토피아에 있는 코소보 전투의 내용은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코소보 전투는 투르크의 무라드 1세가 발칸반도의 장악을 위해 세르비아를 침공함으로서 벌어집니다. 세르비아측은 라자르 왕자가 지휘관이긴 했지만 보스니아, 알바니아, 헝가리 인들도 상당수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성 비투스의 날 (St Vitus' Day 원래 6월 15일, 1582년 그레고리력 제정이후 6월 28일)

이 날은 세르비아 연합군이 오스만 투르크의 군대에 처참히 짓밟힌 날입니다만 그와 동시에 세르비아의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영광의 날이자 그들의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도망가다가 패한 것은 아니었고 전투의 초반에는 어느정도 대등한 접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 지휘관인 세르비아의 왕자 라자르가 붙잡혀 참수당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게다가 전투후 세르비아의 기사 밀로스 오블릭(영어권에서 소개하듯이Milos Obilic 인지 Milos Cobilich 밀로스 코블리치가 맞는지 둘다 틀린 것인지 모르겠다. 후자쪽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이 오스만 측에 위장 투항을 해서 무라드 1세를 암살하는데 성공하여(오스만 측 기록에서는 전장을 순시하던 무라드 1세가 시체속에 있던 적의 암습을 받아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전투에서 이긴 투르크가 당장 실속을 차리지 못하게끔 만듭니다. 결국 오스만 투르크가 코소보 전역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은 1448년 10월 헝가리가 주축이 된 기독교 발칸 연합군을 무라드2세의 오스만 제국군이 무찌른 2차 코소보 전투 이후였습니다. 세르비아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완전히 멸망된 것은 1459년 이었으니 이 전투로 2세대 가량 세르비아가 더 존속될 수 있었던 셈이지요.

이 전투가 부각되고 세르비아의 민족의식이 고취된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 였습니다. 사실 이 전투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승자인 오스만측 기록은 잘 소개도 되지 않았고 그 기록속에서 과장된 세르비아측 병사수를 예로 들어 뻥튀기 기록이라고 무시하곤 하니까요. 코소보 전투는 무라드 1세가 암살당했다는 이유로 패자가 할말이 많은 전투인 셈입니다. 이로인해 패전 장소인 코소보는 후에 세르비아인들의 성지로 인식되게 됩니다면 문제는 1차 코소보 전투이후 코소보에는 오스만 제국에서 관리를 파견하며 점진적으로 이슬람 교도의 수를 늘였다는 것이지요. 특히 알바니아계 이슬람 교도들의 유입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니 세르비아 극렬 민족주의자로서는 코소보에 있는 이슬람 교도들을 성지를 더럽히는 자들이자 반드시 몰아내야할 존재로 여기는 것이지요. 이들이 수백년전 기록도 명확치 않은 전투의 의미를 대대손손 마음에 담아둔게 아니라 발칸 반도의 갈등이 만들어낸 19세기 극렬 민족주의의를 가슴에 담아두고 과거를 투영하다 보니 코소보 사태가 빚어진 셈입니다. 실제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전투의 의미가 부각된 것도 19세기 부터였습니다. 그외 발칸반도 각 나라의 대립구도는 얽히고 설킨 부분이 많아 여기서 일일이 소개를 하기에는 벅차고 세르비아 인들에게 코소보 전투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알리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덧글

  • 푸욜 2008/03/28 05:49 #

    평소 국제분쟁에 대해 관심이 있던차 코소보에 대한 블로그를 검색하다 이곳에 오게 되었네요, 터키대군을 맞아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세르비아인들의 성지같은 곳으로만 알고 있다가 새로운 사실도 알게되고 의문점이도 어느정도 해결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날거북이 2008/03/28 08:38 #

    푸욜님 / 예, 감사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