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혐오증의 유래 그들의 역사

성인이 되어서도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서구인들이 많고 후자의 경우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에게 많다.

이러한 점을 추적해 보면 인간이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유지하게 된 것은 우유를 자주 접하는 후천적인 이유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이 고기는 먹지마라?'의 저자 Simoons가 1968년에 이러한 주제로 보고서를 내었다.) 우유 혐오증의 뿌리는 알고 보면 깊은 편이다. 동북아시아의 농경민들은 소나 양의 젖을 먹는 유목민들을 혐오했고 유목민들은 부지런히 땅을 일구는 농경민들을 미련한 자들이라고 얕잡아 보았다.

우리의 경우에도 우유를 자주 접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근대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젖을 먹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구역질 나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우유를 먹는 경우는 기껏해야 왕실음식인 타락죽(쌀을 불려 간 후 우유를 넣고 끓인 음식)이 다였다. 양반층의 일부도 우유를 보양식으로 여기고 먹었다.

왕실에서 먹는 우유는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금해지기도 했는데 조선왕조 철종 실록의 명순왕비 행록을 보면 우유를 먹는 것을 두고 이렇게 평하고 있다.

‘이 일은 진실로 고례(古例)인 것이나 소의 젖이 잘 나오지 않으면 생축(生畜)이 번성하지 못하는 것인데 어찌 이런 이익이 없는 일로써 금수(禽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반면 북유럽의 경우, 동물의 젖을 섭취하는데 아무런 꺼리낌이 없었다. 소젖은 물론 구하려고만 하면 지금도 양젖, 염소젖, 말젖, 낙타젖까지 접할 수 있다.

우유를 먹는 것이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는 행동이라 여겼건 혐오스럽게 여겼건 여러모로 우리는 우유를 먹는 식생활과 친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6.25 이후 미국 원조 물품으로 가루우유가 보급되면서부터 우유는 자연스럽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정부에서는 아이들의 체력향상을 위해 우유급식을 적극 권장했다. 그러면서 우유의 강점으로 부각시킨 것은 '우유는 완전식품이며 풍부한 칼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젖당분해 효소가 부족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우유는 그리 유쾌한 음식이 아니었다. 완전식품이라면 왜 소화를 시킬 수 없단 말인가? 소젖을 사람이 먹는게 과연 옳은 행동일까? 하는 원초적인 우유 혐오증이 내재되어 있는 판국에 우유를 먹으면 오히려 칼슘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에 걸린다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우유 혐오증이 은근히 확산되기 시작한다. 또한 여기에는 신생아에게 모유보다는 분유부터 먹이고 보는 세태를 비판하는 의미도 조금은 숨어있다.

우유 유해론을 강조하는 사이트들을 보면 각종 유사과학을 마치 정설인양 늘어놓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만에 하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는 이런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더구나 우리는 우유를 성인들이 접해야 하는 음식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니 더욱 그렇다. 마시면 탈이 나는 사람이 많은 판국에 우유 마시기 캠페인 따위를 수시로 펼치는 것도 마땅찮으니 이런 혐오증이 퍼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