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야구의 추억 공놀이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 가끔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야구장에 아이들이 없다.'는 푸념을 하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다.

일단 요즘은 왠만한 대도시에는 아파트가 가득 들어차다보니 아이들이 마음놓고 야구할 곳은 커녕 공한번 제대로 찰 곳도 마땅찮을 지경이다. 거기에 야구중계를 하는 시간에 수많은 아이들이 학원에 있는게 현실이다.

어쨌거나 동네야구가 성행하던 시절은 지금은 없는게 꼭 있었다. 동네마다 존재했던 공터였다.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팀을 갈라 야구를 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공만가지고 하는 주먹야구(동네마다 짬뽕, 찜뽕 등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와 달리 제대로 장비를 갖추어서 하는 동네야구였다. 장비라야 봐야 각자 가지고 있는 글러브와 여러명이 돌려 쓰는 배트 몇개가 다였지만 이렇게 장비를 모아 갖추어 하다보면 왠지 뿌듯한 자부심이 들 지경이었다.

동네야구에서 희귀 아이템(?)은 포수 미트 및 장비와 1루수 미트였다. 가끔 이런 것을 보이는 녀석도 있었는데 필자가 가진 희귀 아이템은 야구 헬맷이었다. 사실 이런 야구경기에서는 경기용 야구볼(이걸 그 때는 하드볼이라고 불렀다,)이 아닌 연식 야구공이 자주 쓰였고 대단찮은(!) 투수들이 던지는 공이 몸에 아프게 맞는 일은 잘 없었지만 이를 쓰고 나면 든든했다.

그래동네 야구 투수들의 컨트롤은 엉망이라 스트라이크존은 태평양과 같이 넓었고 이조차도 충족을 못시켜 볼넷은 볼다섯으로 완화되어 적용되기도 했다. 어디 투수뿐인가. 포수 볼 사람이 없어 이팀 저팀 포수를 다 봐주는 부정포수가 생기기도 하고 뜬 공만 나왔다 하면 긴장의 연속이었다. 번트는 비겁한 짓이었도 아예 파울 한계라인을 그어 놓기도 했다. 가끔 동네 노는 형들이 부정 용병으로 끼어들기도 했다.

그냥 노는 일 같지만 사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모아 야구시합을 한다는 건 정말 큰일이었다. 장소야 동네 공터로 한다고 하지만 일단 사람을 모으는거 부터가 만만치 않았기에 야구의 필요 충족 요건인 9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럴때는 2루를 없애는 편법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러면 뭔가 제대로 야구를 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게 '투명주자'였다.

투명주자!

루상에 나갈 사람도 모자랄때 가상의 주자를 루에 세워두는 획기적인 시스템이었다. 이런 방식은 친구와 단둘이 벽에 스트라이크 존을 분필로 그려 놓고 야구를 할때도 적용될 수 있었다.

동네야구 최악의 불상사는 공이 어느 집의 창문으로 돌진하는 경우다. 창문이 박살나면 선수들은 자동해산 되고 그것으로 경기는 종료되고 만다. 두번째 불상사는 몇개 없는 공이 남의 집 담벼락 틈새로 들어가거나 하수구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다. 덕분에 하수구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본 경험을 한 적도 있었으니 체험 삶의 현장이 따로 없었다. 세번째 불상사는 밥먹으러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통보다. 주심의 퇴근본능보다 무서운 콜에 시합은 자동종료되고 만다.

요즘은 어쩌다가 길에서 캐치볼이라도 하는 아이들을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아이들이 놀곳이 없다. 어른들은 그런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아버지와의 캐치볼은 그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꼭 야구가 아니어도 좋다. 아이들에게 조작된 놀이기구가 중심에 버티고 서 있는 놀이터가 아닌 무엇인가를 창조해서 꾸려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누구 입속에 들어갈지 모르는 미친소 걱정도 걱정이지만 이런것 또한 걱정스럽다. 

덧글

  • 어부 2008/05/06 07:02 #

    추억이 새록새록이군요 -.-
  • 날거북이 2008/05/06 08:13 #

    어부 님 / 가끔 추억에 잠기면 행복해지지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