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비엔나 포위전(Battle of Vienna : 1683) - 1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1529년, 헝가리를 거의 복속시켜 나가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1세는 오스만 제국의 헝가리의 복속을 저지하려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견제하기 위해 25만 대군을 동원하여 비엔나를 포위공격한다.

-쉴레이만1세(Süleyman I 제위 1520~1566 흔히 '쉴레이만 대제'로 높여 부르기도 한다.)

쉴레이만 1세의 1529년 비엔나 포위전은 줄곧 내리는 비로 인해 별다른 공방없이 한달여만에 끝나게 되었다. 비록 합스부르크가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비엔나를 포위했지만 쉴레이만1세도 거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한번에 분쇄시킬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몇년 후 오스트리아와의 평화협정으로 헝가리를 분할 관리하는 것으로 오스만과 합스부르크가와의 분란은 마무리가 된다. 쉴레이만 1세의 관심은 페르시아 지역의 점령에 더 쏠려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의 영도아래 흔히 붉은수염 바르바로사로 알려진 악명높은 해적출신 발바롯사 하이레딘 파샤(또는 하이르 앗 딘 이라고도 함. 대항해시대 게임을 즐겼던 분들은 아마 치를 떨지도)를 해군제독으로 내세워 프레베자 해전(1538)에서 에스파냐, 로마 교황청, 베네치아 공화국의 연합함대를 무찌름으로서 지중해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로인해 쉴레이만1세 치하의 오스만제국은 최전성기를 누린다.

-프레베자 해전(1538)

그러나 1571년 레판토해전에서는 오스만제국이 신성동맹을 맺은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 연합군에게 참패를 당해 지중해에서 오스만 제국의 기세는 한풀 꺾이게 되나 여전히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오스만 제국의 힘은 막강하기 짝이 없었다.

-레판토 해전(1571)

1648년 이브라힘 1세가 폐위와  예니체리 부대의 난입으로 살해된후 불과 6세의 나이로 술탄의 자리에 오른 메메드4세의 치세는 위태해 보였으나 유능한 대신의 영입으로 오스만 제국은 곧 안정을 찾는다. 메메드4세는 국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사냥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별칭은 '사냥꾼'이었다. 이러한 그의 치세에 대규모 원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치 운명과도 같이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와의 숙명적 대결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덧글

  • Zine군 2008/06/28 11:46 #

    유모차 살수차 대치 포스트에서의 무식한 대응에 대해 죄송합니다.
    원래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않좋은 일도 있고 해서 그만
    쿨게이에 대해 열폭하고,
    님한테까지 폭언을 했습니다.

    맘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날거북이 2008/06/28 12:01 #

    Zine님 / 일부러 여기까지 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멋쩍네요. ^^a 괜찮습니다.
  • 카니발 2008/06/29 19:03 #

    그러고보니 이 전투 이후로 오스만 제국이 슬슬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기대됩니다.^^


    그리고 후사르들이 마지막 마무리를 짓는 전투인가요? ㅎㅎ
  • 날거북이 2008/06/29 19:08 #

    카니발님 예, 바로 그 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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