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4일
뉴라이트에 대하여
뉴라이트
뉴라이트의 주장 자체를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 없다. 뉴라이트의 주장은 완성된 하나의 담론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수라고 주장하는 이슈의 정체성을 굳히기 위한 장치에다가 진보에 대한 안티 담론으로 이루어진 괴이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 식민지근대화론, 기독교의 자본,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썩은 나무위의 독버섯처럼 돋아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공식 토론 석상에서 주장하는 바가 조리 없고 무책임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담론을 내어놓기 보다는 상대에 대해 색깔론으로 덧칠을 한 후 그 모습을 비난하는 구태의연한 방법을 주로 쓴다. 멀쩡한 사람에게 빨간 페인트를 끼얹은 후 오히려 그 페인트를 끼얹은 사람이 야단법석을 떨며 '이것봐라 당신은 빨갛다.'라고 한다면 대체 무슨 경우일까? 뉴라이트의 행색은 과거부터 이렇게 해온 수작을 한겹 더 포장해놓은 모양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위장된 여론을 통해 수구보수세력을 대변한다. 이들은 말로만 기존 보수(사실은 수구)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뉴라이트가 말하는 뉴라이트의 허구성
이들은 과거 좌파세력이 뉴라이트로 전향되었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그런 이미지를 위해 뉴라이트 활동전면에 나서는 이들은 40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좌우파의 개념조차 없는 이들이라는 비판과 모순되는 점을 을 비켜가기 위해 한국식 좌우파 개념이라는 것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것은 억지로 도식적 편가르기를 하는 측면에서 도출된 허구일 뿐이다.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 뉴라이트는 여러가지 설명을 하며 그것이 한국적 특색에 기인됐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히는 좌우가 아닌 수구와 진보의 선상에서 보아야 하는 관점을 왜곡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의 자유
뉴라이트가 최근 대중적으로 가장 내세우는 시장의 자유는 정책적 방향이지 꼭 그것이 옳다 그르다로 나눌수는 없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시장의 자유가 누구를 위한 시장의 자유화인지를 따져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것은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한 시장의 자유일 뿐이다. 한국이라는 시장만 두고 보면 정부와 대기업이고 세계로 시야를 옮기면 시장독과점이 우려되는 품목 - 특히 농산물을 다루는 미국의 논리에 지고지순하게 따르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러는 것일까? 지킬 것은 지키며 이득을 꾸려나가자는 쪽보다는 시장자유를 비판없이 따르며 대기업을 통해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것이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시장의 자유다.
대안교과서
이들의 대안교과서는 그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과거 친일자본세력에서부터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의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실증적으로 파해쳐진 적은 없으니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심증은 적어도 친일 수구를 옹호하는 입장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길이라고 여기는 주장을 아무리 미화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대중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약간의 부담을 짊어지면서까지 그런 주장을 펼치는 배후에는 그러한 자본논리가 숨어 있음이 의심된다.
뉴라이트의 주장 자체를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 없다. 뉴라이트의 주장은 완성된 하나의 담론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수라고 주장하는 이슈의 정체성을 굳히기 위한 장치에다가 진보에 대한 안티 담론으로 이루어진 괴이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 식민지근대화론, 기독교의 자본,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썩은 나무위의 독버섯처럼 돋아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공식 토론 석상에서 주장하는 바가 조리 없고 무책임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담론을 내어놓기 보다는 상대에 대해 색깔론으로 덧칠을 한 후 그 모습을 비난하는 구태의연한 방법을 주로 쓴다. 멀쩡한 사람에게 빨간 페인트를 끼얹은 후 오히려 그 페인트를 끼얹은 사람이 야단법석을 떨며 '이것봐라 당신은 빨갛다.'라고 한다면 대체 무슨 경우일까? 뉴라이트의 행색은 과거부터 이렇게 해온 수작을 한겹 더 포장해놓은 모양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위장된 여론을 통해 수구보수세력을 대변한다. 이들은 말로만 기존 보수(사실은 수구)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뉴라이트가 말하는 뉴라이트의 허구성
이들은 과거 좌파세력이 뉴라이트로 전향되었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그런 이미지를 위해 뉴라이트 활동전면에 나서는 이들은 40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좌우파의 개념조차 없는 이들이라는 비판과 모순되는 점을 을 비켜가기 위해 한국식 좌우파 개념이라는 것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것은 억지로 도식적 편가르기를 하는 측면에서 도출된 허구일 뿐이다.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 뉴라이트는 여러가지 설명을 하며 그것이 한국적 특색에 기인됐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히는 좌우가 아닌 수구와 진보의 선상에서 보아야 하는 관점을 왜곡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의 자유
뉴라이트가 최근 대중적으로 가장 내세우는 시장의 자유는 정책적 방향이지 꼭 그것이 옳다 그르다로 나눌수는 없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시장의 자유가 누구를 위한 시장의 자유화인지를 따져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것은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한 시장의 자유일 뿐이다. 한국이라는 시장만 두고 보면 정부와 대기업이고 세계로 시야를 옮기면 시장독과점이 우려되는 품목 - 특히 농산물을 다루는 미국의 논리에 지고지순하게 따르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러는 것일까? 지킬 것은 지키며 이득을 꾸려나가자는 쪽보다는 시장자유를 비판없이 따르며 대기업을 통해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것이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시장의 자유다.
대안교과서
이들의 대안교과서는 그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과거 친일자본세력에서부터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의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실증적으로 파해쳐진 적은 없으니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심증은 적어도 친일 수구를 옹호하는 입장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길이라고 여기는 주장을 아무리 미화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대중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약간의 부담을 짊어지면서까지 그런 주장을 펼치는 배후에는 그러한 자본논리가 숨어 있음이 의심된다.
# by | 2008/07/04 10:15 | 실체를 추적하라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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