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비엔나 포위전(Battle of Vienna : 1683) - 2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폐하, 서둘러 빈을 떠나야 합니다."

7월,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제국황제 레오플트 1세는 전령의 황망하고 두서 없는 보고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신을 모욕하는 잔인하고 흉포한 투르크인들이 벌써 죄르(헝가리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까지 와 있습니다. 헝가리인들도 합세한 듯 합니다."

레오폴트 1세는 두려움에 온 몸을 떨었다. 그해 겨울, 오스만과의 협상이 결렬된지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은 아니었지만 오스만의 20만 대군에 비해 빈의 방비태세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레오폴트 1세(Leopold I 1640.6.9~1705.5.5)

급보를 전해들은 그날 저녁, 레오폴트는 호프부르크궁정의 모든 식솔과 함께 서둘러 빈을 빠져 나갔다. 빈에 있는 고작 일만 이천명의 수비병으로는 오스만의 20만 대군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오스만이 쳐 들어온다는 사실과 함께 황제가 궁정을 빠져 나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빈 전역에 퍼졌고 수백명의 피난민이 그 뒤를 따라 나섰다.

레오폴트가 이렇게 서둘러 빈을 빠져나간 이유는 신출귀몰 돌아다니는 오스만의 기마 돌격대 아큰즈(akinci)의 활약탓도 있었다. 아큰즈는 오스만의 정규군에 편성된 이들이 아니었다. 굳이 번역하면 특공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평소에는 유목민 생활을 하다가 오스만 술탄의 소집령이 떨어지면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이동과 기습에 용이한 가벼운 활과 창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출몰은 오스트리아 군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큰즈(akinci)

이스탄불에서부터 1600km를 행군해 온 오스만의 대군은 레오폴트 황제가 도주한 후 6일이 지나서야 빈 외곽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아큰즈에게 잡힌 오스트리아 탈영병들은 오스만의 총사령관 카라 무스타파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제는 이미 도주했으며 빈에는 겨우 만여명 남짓한 병사들이 남아서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메메드4세(Mehmed IV, 1642 ~ 1693)

-카라 무스타파(Kara Mustafa Paşa)

오스만의 술탄 메메드 4세가 엄청난 신뢰를 보내며 군대의 전권을 위임한 카라 무스타파는 빈에서의 완강한 저항을 예상하였기에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카라 무스타파의 지휘하에 빈 주위에 막사를 꾸리던 오스만 군대는 갑자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빈을 바라보며 의아해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빈 시내에서 화재가 발생해 귀족들의 저택들이 잿더미가 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메메드4세와 카라 무스타파는 기독교 세계의 번화한 도시이자 합스부르크가의 상징인 빈을 오스만 제국의 전리품으로서 그대로 손에 넣고 싶어했다.

"저 무지한 기독교인들을 보라. 저들은 두려움에 자신들의 아름다운 도시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

카라 무스타파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빈을 포위하라. 오스만 군대의 위엄을 떨쳐 저들이 스스로 무릎 꿇도록 만들어라!"

빈의 외곽에는 거대한 오스만 군대의 막사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60일간의 비엔나 포위전의 시작이었다. 현재 독일의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파사우에 피신해 있던 레오폴트 1세는 독일의 제후들과 교황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들은 군대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오스만과 원한이 있는 폴란드의 왕 얀 소비에스키가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빈으로 전진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