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비엔나 포위전(Battle of Vienna : 1683) - 3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폴란드군이 이미 빈에 이르렀다고?"

카라 무스타파는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포로학살과 주변 도시 약탈 등 빈의 사기를 꺾어 항복해 오기를 바랬던 전술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빈을 구원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독일 제후군만 꼽아보면 작센군 9천, 바이에른군 일만, 스바비아&프랑코니아군 9천 5백으로 모두 채 3만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의 왕 얀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군은 삼만 칠천이나 되었으며 이들의 주력인 장창 돌격기병 후사르는 전 유럽에 그 용맹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이에 비해 오스만의 군대는 빈을 포위하기 시작한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태만했으며, 아큰즈는 중앙부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주변을 약탈하는 것에만 재미를 들이고 있었다.

-얀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1674 ~ 1696)


-후사르 : 장창을 주무기로 쓰는 폴란드의 엘리트 기병.

"그래봤자 이곳에 다다른 병사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우리는 저들보다 병력이 많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빈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면 저들이 어쩔것인가."

카라 무스타파는 빈의 성벽에 갱도를 뚫고 화약을 쌓아 성벽을 날려버리기로 결심했다. 빈의 수비병들은 오스만 군대의 의도를 은근히 눈치 채고 있었지만 감히 성을 나서 이를 저지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밤마다 타오르는 구원병들의 모닥불만이 빈의 희망이었다.

갱도를 뚫은 지 5일만에 오스만 군대는 아침에 화약을 점화시켜 폭파시켰고 성벽을 무너트렸다. 그러나 이미 새벽부터 오스만의 야영지에 다다른 독일 보병과의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오랜 포위로 군기가 해이해진 오스만 군대는 숫적우위에도 불구하고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빈 포위 전투 상황을 그린 그림

저녁까지 이어진 산비탈 오스만 진영에서의 전투는 폴란드 후사르의 돌진으로 인해 오스만의 진영이 완전히 쑥밭이 되면서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오스만 부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진영을 버려둔 채 도주하기에 바빴다. 오스만의 군대는 너무나 수가 많았기에 합스부르크의 연합군은 이들의 뒤를 쫓아 가지 않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빈을 구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엄청난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덧글

  • hotdol 2008/07/13 17:32 #

    역시 후사르는 간지납니다!
  • 날거북이 2008/07/13 18:52 #

    약간의 미화를 감안해도 저렇게 극적이니 간지나죠.
  • 카니발 2008/07/13 21:22 #

    역시 후사르는 사기입니다. 뭐 든 돈을 생각해보면.. -ㅅ-;;
  • 날거북이 2008/07/13 21:51 #

    평소에도 기본 시중만 두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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