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비엔나 포위전, 그 후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1. 전투에서 패한 카라 무스타파는 자신의 패배를 숨기기 위해 수많은 파샤(장군)들과 부하들을 처형하는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퍼져가는 패배의 소문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술탄 메메드 4세도 동요하는 국정과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카라 무스타파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을 시켜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카라 무스타파는 활줄에 목이 죄여 처형당했고 참수당한 그의 두개골은 박제로 만들어졌다.

-처형당하는 카라 무스타파

2. 폴란드의 왕 얀 소비에스키는 빛나는 승리이후 폴란드, 베네치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 교황이 손을 잡은 신성동맹의 주축이 되었다. 이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안정시켜 폴란드을 외침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만든 얀 소비에스키는 그러나 국내정치에 있어서는 내부분쟁을 효울적으로 조율하지 못했다. 그의 사후 폴란드는 빠르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3. 오스만 제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신성동맹의 파상적인 공세를 받고 1687년 모하치 전투(1526년 헝가리군이 오스만군에게 전멸을 당한 모하치전투와 다르다.)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만다. 메메드4세는 결국 퇴위해야만 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본격적으로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4. 일설에 따르면 빈 전투가 끝난 후 폴란드인 오스만 통역사 콜쉬스키는 오스만군이 미처 거두어 가지 못한 낙타 2만5천마리에 실린 초록색 콩을 보고 이를 낙타먹이로만 여긴 빈 사람들에게 요구해 이것을 거의 무상으로 넘겨 받았다고 한다. 초록색 콩은 사실 커피콩이었다. 그는 이를 이용해 빈에 최초의 카페를 열고 커피에 크림이나 우유를 잔뜩 타 먹는 방식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설도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유럽에서 커피에 크림이나 우유를 타먹었다는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터키사람들은 커피에 우유를 타먹는 습관을 불결하다고 여겨 따르지 않았다.) 확실한건 빈 전투 이후 빈에 커피중심의 카페문화가 발전했다는 점이다.

5. 빈 전투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음식이 바로 크로와상(croissant)이다. 오스만 군대가 갱도를 뚫을때 이를 인지하고 알린사람이 바로 벤더라는 제빵업자였고 이 사람이 자신의 공을 선전하기 위해 터키 국기모양을 본딴 빵을 만든것이 크로와상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크로와상(불어로서 초승달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은 빈 전투로부터 거의 백여년 후 파리로 시집을 간 그 유명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와네트로 인해 비롯되었다. 이 역시 기원을 1차 빈전투로 잡는 얘기도 있고 빈전투와는 상관없는 민간의 설화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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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카니발 2008/08/03 16:49 #

    전쟁이 문화의 교류를 일으키는 건 긍정적인 측면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하는지 참.. 무섭네요 ㄱ-;;
  • 날거북이 2008/08/03 18:07 #

    게다가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 hotdol 2008/08/03 20:06 #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전쟁의 산물은 사람을 살리죠.
    이슬람이나 유럽 어느 한 쪽으로 중세초기에 승부가 기울었다면 지금의 물질문명은 없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 날거북이 2008/08/03 22:14 #

    결국 투쟁의 산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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