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8 도움이 되지 않은 명나라(1)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불랑기4호. 불랑기포는 크기에 따라 1호에서 5호까지로 구분된다.


조선의 요청과 요동의 정세에 위협을 느낀 명나라는 임진왜란 발발 두달만에 조승훈을 선봉으로 한 3500명의 명나라군을투입시킨다.

이에 이르기까지는 조선의 끊임없는 출병요청이 있었지만 명나라는 한동안 조선이 일본과 손을 잡고 자신들을 치려 한다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전까지 조선은 명에 있어서 군사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 조선이 단숨에 한양이 함락되고 왕이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지경을 당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요동에 있는 병력을 이끌고 온 조승훈은 '당장에 일본군을 쓸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며 한달이나 지체한 후 평양성을 공격하지만 일본군에게 완전히 참패하고 요동으로 도주해 버린다. 5개월 뒤, 일본군이 생각보다 강함을 인식한 명나라는 이여송을 대장으로 삼고 각지에서 정예병력을 모집하는 한편 일본군의 조총을 압도할 포르투갈 대포 등의 화약무기를 장비한 5만명의 군사를 투입하게 된다.

이여송은 그의 선조가 조선사람이라는설이 있고 전국 각지에 관련설화를 많이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관련설화들의 공통점이 하나같이 '이여송이 조선의 어느 지리를 보니 중원을 장악할 큰 장수가 나올 형국이었다. 이여송은 이를 막기 위해 말뚝을 박아 혈을 질렀다. 그러자그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얘기는 대부분은 구체적인 물증없이 설화만 전해 내려오는데, 설화의 주인공이 이여송에서 다른 이름으로 바뀌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는 관련설화가 실제 사실이라기 보다는 이여송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반영해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큰 인물이 나올만한 혈자리를 알아볼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으나 결과적으로조선에 피해만 준 인물.'이라는 평가이다.

명군이 진주한 이후 당시 조선민중 사이에서는 '일본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는 속요가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느슨한 얼레빗보다는 촘촘한 참빗으로머리를 빗으면 이나 비듬이 모조리 걸러지듯 가는 곳마다 명나라 군사들의 수탈과 착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강국으로만 알았던 조선이 자신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허약함을 알자 명나라 지휘관들의 업신여김도 극에 달했다.

더욱 심각했던 건 군 작전권이 명나라에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명나라는 이여송의 평양공격이 성공해 일본군을 내몬 후 벽제관 전투에서는 일본군을 깔본 무리한 진군으로 수천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하게 된다. 이후 명나라는 강화회담에만 신경쓰거나 방어적인 전투만 치렀을 뿐 적극적인 전투의지를 내보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입은 손해는 고스란히 조선의 몫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2차 진주성 전투의 비극이었는데 명나라는 강화를 맺을 것이라는 일본군의 말만 믿은 채 진주로 구원병을 보내지도 않았고 조선 조정이 구원병을 보내는 것까지 방해를 하게 된다. 이런 틈에 모든 병력을 집결시킨 일본군이 고립된 진주성을 함락시켜 수만명이 살상당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