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념 포스팅]연산군은 과연 한글을 탄압했을까?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1504년, 연산군이 함부로 선비를 잡아죽이는등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한글로 된 벽서와 투서가 여기저기에 나 붙었다. 그러자 연산군은 한글(언문)을 배우거나 쓰는 일을 금지시킨다. (참조 : 조선왕조 실록)

연산 54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7월 20일(무신) 2번째기사
투서의 일로 언문을 배우거나 쓰지 못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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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하기를,
 
“어제 예궐(詣闕)하였던 정부(政府)·금부(禁府)의 당상(堂上)을 부르라. 또 앞으로는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며, 이미 배운 자도 쓰지 못하게 하며, 모든 언문을 아는 자를 한성 의 오부(五部)로 하여금 적발하여 고하게 하되,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자는 이웃 사람을 아울러 죄주라. 어제 죄인을 잡는 절목(節目)을 성 안에는 이미 통유(通諭)하였거니와, 성 밖 및 외방에도 통유하라.”
 
하였다.

이런 전교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새로운 율법을 정해 처벌할 구실을 마련한다.
 
 연산 54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7월 22일(경술) 7번째기사
언문으로 구결 단 책을 불사르고 한어를 언문으로 번역하는 것을 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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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하기를,
 
“언문을 쓰는 자는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로, 알고도 고하지 않는 자는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로 논단(論斷)하고, 조사(朝士)의 집에 있는 언문으로 구결(口訣)단 책은 다 불사르되, 한어(漢語)를 언문으로 번역한 따위는 금하지 말라.”
 
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국어를 한글로 번역한 것은 금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모양새가 현재의 무엇인가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연산 56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12월 10일(병인) 3번째기사
병조 정랑 조계형에 명하여 언문으로 역서를 번역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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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 정랑 조계형(曺繼衡) 을 명하여 언문(諺文)으로 역서(曆書)를 번역하도록 하였다.
 
 
한글을 금할때는 언제고 역서를 번역하도록 시키고 있다. 즉 연산군은 한글에 대해  제한적인 사용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특히 한글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벌을 주었다.


언서의 죄율로 한곤을 잡아 들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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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박호겸(朴好謙) 이 아뢰기를,
 
“금란 서리(禁亂書吏)가 말을 타고 금령(禁令)을 범한 사람을 잡아, 언문(諺文)으로 쓴 편지를 찾아 내었는데, 추문(推問)하였더니 ‘겸사복(兼司僕) 한곤(韓崐) 이 새 목장(牧場)에 있으면서 그의 첩인 운평(運平) 에게 통신하는 편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언서(諺書)의 죄율(罪律)이 경(輕)하지 않으므로 곤 이 도피할 것 같사오니,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나국(拿鞫)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좇았다.
 
이렇게 사사로운 편지조차도 한글을 썼다고 벌을 주었으니 이는 현재 인터넷을 옭아매기 위해 추진중인 사이버모욕죄를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닌 인터넷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법처벌을 강화하려 들듯이 연산군은 한글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나 이를 평민들이 쓰고 배우거나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통제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한글을 법적으로 옭아매려고 한 통치자의 전횡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말과 글을 옭아매려고 하는 통치전략은 항상 그 끝이 비참했음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