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에피소드 - 3 산음현 7세 여아 임신사건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윤7월 2일(계사) 1번째기사

산음현에서 7살 먹은 여자가 잉태했다는 일에 대하여 알아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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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음현(山陰縣) 에 일곱 살 먹은 여자가 잉태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경상 감사 김응순(金應淳) 이 치계(馳啓)하였는데, 임금이 이는 요괴의 인물 중의 큰 것이라고 하면서 크게 우려하였다. 좌의정 한익모 와 좌부 승지 윤면헌(尹勉憲) 이 없애버리자고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역시 나의 백성 중의 한 아이이다. 어찌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문학 구상(具庠) 에게 명하여 달려가서 염탐해 보고 오라고 하였다.
 
7살에 임신을 하는 일이 가능한가?

인터넷 상의 검증되지 않은 얘기에 따르면 페루에서 5세 여아가 임신 출산을 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있다. 하여간 당시 이 일은 충격적이고 괴이한 일로서 7세 여야를 임신시킨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조차 상상하기 어려워한 이들은(사실 지금도 그런데 당시로서는 더욱 상상하기도 망측한 일이 아닌가.) 이를 괴이한 일이라 여겨 없애버리자고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임금은 일단 조사를 명한다.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윤7월 5일(병신) 1번째기사
김치인이 산음현의 일과 시종신의 양부·생부에 대한 기자의 일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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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임금이 산음현(山陰縣) 의 일로 대신들에게 하문하니, 영의정 김치인 이 말하기를,
 
“세상에는 간혹 괴이한 기운이 모인 곳이 있습니다. 옛날 은(殷)나라 의 상상(祥桑)이 아침에 싹이 났다가 저녁에 말라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실로 은나라 중종(中宗)이 자신을 되돌아 보고 덕을 닦은 것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음양(陰陽)이 교감하지도 않고 공연히 생겼겠는가? 수령의 도리에 있어서는 그 애의 아비가 있는지의 여부를 상세히 탐문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고한 말 가운데 다만, ‘날과 달로 잘 자란다.’는 등의 말로 장황하게 늘어놓아 먼저 소문을 퍼뜨려 소동을 일으켰으니 매우 잘못하였다.”
 
하였다. 김치인 이 말하기를,
 
“이러한 괴물은 저절로 소멸될 것입니다.” (이하 생략)
 
 
산음현의 일에 대해 영조가 묻자 답한 영의정 김치인은 옛 전례와 고사에 해박한 이였다. 상상(祥桑)은 요괴스러운 기운을 품은 뽕나무를 말하는데 은나라에서 하루아침에 크게 자란 요괴스러운 뽕나무가 임금의 덕에 눌려 하루아침에 말라죽은 고사를 예로 들고 있다. 김치인은 그런 고사를 들며 임금의 덕을 높이면 그런 괴이한 일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있고 영조는 상식적인 선에서 조사를 하지 않는다며 지적하고 있다. 김치인은 '(임금의 덕이 높으므로)괴물은 저절로 소멸될 것이다.'란 말로 슬쩍 이 얘기를 회피하고 있다.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윤7월 29일(경신) 2번째기사
산음 어사 구상에게 아이를 낳은 여자 아이의 일에 대해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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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음 어사(山陰御史) 구상(具庠) 이 입시하여 서계(書啓)를 읽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탐문하였는가?”
 
하니, 구상 이 말하기를,
 
“여러 방법으로 캐물어 그 정상을 알아냈습니다. 본관(本官) 및 단성 현감(丹城縣監)과 같이 조사하였더니, 종단(終丹) 의 형 이단(以丹) 의 공초가 들은 바와 같았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소금 장사 송지명(宋之命) 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 종단 의 나이가 정말 일곱 살이었는가?”
 
하니, 구상 이 말하기를,
 
“그 이웃에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해서 데려다가 물어보았더니, 과연 일곱 살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키는 얼마나 되던가?”
 
하니, 구상 이 말하기를,
 
“몸이 이미 다 자랐습니다. 송지명 을 감영으로 잡아다 도신과 같이 엄히 문초해 보았더니, 한결같이 이단 이 고한 말과 같았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관(史官)은 마땅히 사책에 그대로 써야 할 것이다. 일곱 살 아이가 애를 낳았으니,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 지아비를 알아냈으니, 현혹된 영남의 민심이 거의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니, 구상 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어사의 보고에 간음한 사람이 곤장 한 대도 치지 않아 자백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내가 예상했던 바와 우연히 합치된다 하겠다. 그러나 지금 조사를 끝냈다고 나의 마음이 어찌 해이되겠는가? 괴물은 괴물이다. 내 비록 8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의 덕이 요괴를 이길 것이다. 어찌 사서(史書)에 없는 일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비록 은 고종(殷高宗) 의 구치(雊雉) 와 상상(祥桑)의 일은 없지만, 어찌 스스로를 수양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어사의 서계를 승정원에 두고 조용히 하교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번 연석(筵席)에서 몇 차례 하교했으나, 이목(耳目)의 역할을 하는 신하들이 마치 귀머거리나 장님처럼 한 사람도 논계(論啓)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하교하고 싶었으나 이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묵묵히 있었다. 세상에 어찌 아비없는 자식이 있겠는가? ‘날과 달로 무럭무럭 자란다.[日就月將]’는 말을 어찌 종단 같은 자에게 비유할 수 있겠는가? 무식한 면임(面任)16760) 은 비록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독서한 사대부가 어찌 그 말을 베껴 쓸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백리를 다스리고 십 리를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말 어렵다. 산음 현감에게 사적(仕籍)에서 삭제하는 법을 시행하고, 이 장계를 조보(朝報)에 내도록 하라.”
 
하고, 그 여자·어미·간통한 남자·아이를 바다의 섬에다 나누어 귀양보내어 노비로 삼으라고 명하였다.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이들까지 벌을 주고 있는건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대목일런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에는 그저 당연할 조치일 뿐이었다..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8월 1일(임술) 1번째기사
내국에서 입시하니 산음현의 일이 괴이하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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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국에서 입시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 종단(終丹) 의 일은 정말 괴이하다. 포사(褒姒) 와 견훤(甄萱) 의 일註) 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동심(動心)되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필시 이러한 여자가 이러한 사람을 낳을 리는 없기 때문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였다.

영조께서 상당히 쿨한 척(?!) 하신다. 표사와 견훤의 일은 도마뱀 지렁이 따위가 후에 큰일을 낼 사람을 잉태시켰다는 얘기다. 이제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8월 5일(병인) 3번째기사
주강을 행하고 산음현의 종단의 일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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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강(晝講)을 행하였다. 임금은 《소학(小學)》 서문(序文)을, 시강관 윤영렬(尹永烈) 은 어제 서문(御製序文)을, 검토관 김상집(金尙集) 은 소지(小識)를 읽었다. 임금이 또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七歲不同席]’는 구절을 읽고 나서, 말하기를,
 
“예로부터 남녀를 일곱 살을 한계로 삼았고 보면, 성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영남에서 생긴 일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하였다. 상번(上番)과 하번(下番)이 글 뜻을 대략 설명하고 나자, 경연관에게 먼저 물러가라고 명하였다. 참찬관(參贊官) 홍양한(洪良漢) 이 말하기를,
 
“옛날에 명(明)나라 때에도 일곱 살 먹은 아이들이 교간(交奸)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재상은 독서한 사람을 써야 하고, 승지는 고사를 많이 아는 사람이 귀중하다.”
 
하였다. 이득종(李得宗) · 조영진(趙榮進) 에게는 서용하지 않는 법을 시행하고, 구선행(具善行) 은 의금부에 내려 보내 추고하라고 명하였는데, 특진관(特進官)이 다른 일을 핑계대고 경연에 나오지 않았다고 승지가 아뢰었기 때문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학문에 게으른 관료들을 야단치고 있다. 괴이한 일이라고 하며 민심동요를 염려해 입막음 부터 하려한 일부 관료와는 달리 영조는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는 상식선에서 대처해 나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보니 닥치고 국민들의 입부터 막지않고 일을 상식적으로 처리하는 정치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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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들꽃향기 2008/10/11 01:49 #

    “이 역시 나의 백성 중의 한 아이이다. 어찌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f라는 말은 상식뿐만 아니라 나름 책임도 느껴지는 한 마디인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산음현은 이후에도 음란한 사건이 많이 난다고 결국 이후에 이름은 '산음'에서 '산청'현으로 바꿔버렸다죠;;
  • 날거북이 2008/10/11 08:22 #

    예, ^^ 덧붙인 자료 감사합니다.
  • 지옥에여왕 2008/10/11 05:26 #

    아무리 병신이라도 생일은 축하해줄게 병신아 ㅋㅋㅋㅋㅋㅋㅋㅋ
  • 날거북이 2008/10/11 08:13 #

    젠장 ㅠㅠ
  • 제절초 2008/10/11 13:51 #

    잠깐 산음... 이면 어디서 많이 듣던 동네 이름인데 말입니다. 거기 이름이 산청으로 변하는군요 orz 저 시대에도 성조숙증은 있었던걸까요 'ㅅ'
  • 날거북이 2008/10/11 14:14 #

    아마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0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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