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파직 사건의 전말이라고? 풉! 실체를 추적하라

-천문대인 간의대의 상상도

포스팅으로 다른 블로거의 글을 '까는' 건 쉬운일은 아니다. 일단 당사자의 마음이 상하니까.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글을 보면 까고 싶은 악마적 마음이 마구 꿈틀거린다.

이런 레이더에 포착된 문제의 글은 다음포탈메인에 오른 장영실 파직사건의 전말은? 이란 글이다.제목이 상큼하고 누구나 클릭할 만한 글이다. 그 점은 칭찬할만하나 그게 다다.

......따라서 간의대의 존재가 밝혀지면 그것을 만든 장영실의 목숨 또한 보존할 수 없었기에 그를 "안여파손사건"에 연루시켜 파직한 시킨 것은 세종이 장영실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 해당 블로거의 글 중

일단 추측성 글을 가독성만 따져 메인에 띄운 다음이 문제다. 게다가 해당 블로그 주인장의 이 추측은 100% 틀린 것이다.

세종 99권, 25년(1443 계해 / 명 정통(正統) 8년) 2월 4일(경인) 1번째기사
간의대를 고쳐 지을 자리를 고르라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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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都承旨) 조서강(趙瑞康) 등에게 명하여 간의대(簡儀臺) 를 고쳐 지을 자리를 고르라 하였다.

고쳐 지으려고 헐어버린 것을 두고 '조선만의 역법을 갖는 것 자체가 조선의 입장에선 자주의 상징이었지만 명에게는 일종의 반역'이라서 헐어버렸다고 해당블로그에서는 적어 놓았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럼 왜 고쳐 지으려고 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종 98권, 24년(1442 임술 / 명 정통(正統) 7년) 12월 26일(임자) 2번째기사
박종우 이사검 이정녕 등을 불러 별궁을 후원에 짓는 것를 의논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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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 제조(繕工提調) 박종우(朴從愚) · 이사검(李思儉) 과 성원군(星原君) · 이정녕(李正寧) 을 불러 별궁(別宮)을 후원(後苑)에 짓기를 의논하고는, 이내 명하여 간의대(簡儀臺) 의 동쪽에 집터를 보게 하고, 마침내 간의대 를 그 북쪽에 옮기게 하였다.
 
 이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건 간의대는 그해 바로 옮겨가게 되었다.

 해당 블로거의 추측을 아무리 존중해 준다고 해도 그 추측이 맞다면 그 이후에 간의대는 기록도 없어야 맞다. 하지만 이후의 기록을 보면 간의대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을 조금만 검색해 봐도 금방 알 수 잇다.

문종 7권, 1년(1451 신미 / 명 경태(景泰) 2년) 5월 15일(임자) 5번째기사
앙부의로 해의 그림자를 측량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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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간의대(簡儀臺) 및 혜정교(惠政橋) · 정선방(貞善坊) 의 앙부의(仰釜儀)에서 해의 그림자를 측량하게 하였다. 하지(夏至)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장영실 파직사건의 전말은 과연 무엇일까?

그걸 알면 내가 먼저 포스팅 했지. 추측이나 근거없는 소설이야 백가지는 지어낼 수 있다. 심지어 후궁과의 염문설도 가능하다. 신윤복도 남장여자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에 뭔들 못하겠냐~


덧글

  • 아롱쿠스 2008/11/08 22:44 #

    맞습니다. 그저 드라마의 내용 따위를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죠,,,
  • 날거북이 2008/11/09 13:12 #

    그래서 때로 조금 당혹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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