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성에 대한 인간의 이중성 실체를 추적하라

-개들은 정말 길들여진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인간종 우세라는 환경에 적응한 것일까?

야생의 반대를 묻는다면 대부분 무엇을 얘기할까? 단어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인위성을 거론한다. 야생이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을 의미하면서도 극복의 대상이었다.

사실 야생성이라는 건 인간의 생존에 반하는 입장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야생을 거부하고 자연을 개척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인간은 야생성을 동경한다. 야생의 모습을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과 찬사의 말을 늘어놓는건 흔한 일이다. 좀 더 야생성에 가까운 개를 기르기 위해 늑대와 교배를 시키기도 한다. 반면에 말과 같은 동물은 기껏 얻은 야생의 모습을 지워버리려 힘들게 길들이는 것을 재주로 여기기도 한다.

가깝게 여기는 짐승이 야생성을 보이면 인간은 과감히 그 동물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특유의 생활습관이나 타고난 습성으로 인해 가축화에 실패한 동물들은 인간이 가까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말았다. 그러한 짐승들이 인간과 가장 가깝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은 동물원 뿐이다.

이로인해 인간은 가축화 될 수 없는 생물들에 대한 폭거를 저지르고 있다. 화약 무기의 발전 이전에는 야생 동물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예가 호랑이이 습격이었고 그 밖의 나라에서는 늑대들의 습격이 인간의 생존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결국 지금의 현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런 경쟁구도는 완전히 깨지고 '야생동물'들은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야생동물을 먹이도 제대로 없는 환경으로 내몰면서 사람이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기시여긴다. 그것은 먹이를 스스로 찾는 '야생성'을 해치기 때문이란다.

그러한 동물들과의 경쟁우위로 이미 유리한 곳을 다 선점한 인간이 그러한 동물을 보호한다며 야생성을 얘기하는 건 참 모순이 아닌가.

이 블로그에서는 북극곰 새끼인 크누트 안락사 문제에서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분명한 건 어느 동물의 야생성을 지키자는 말은 인간의 몰염치함에서 비롯한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동물들은 과연 야생성이 거세된 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생존을 위해 인간앞에서 인간이 두려워할만한 야생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반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상대로 그 야생성을 마음껏 뽐내면서도 이를 못 느끼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