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 스페셜...... 뭐냐? -_-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아...... 이런 포스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참 웃긴다. 기본중에 기본적인 내용이 공영방송에서 왜곡 되는 현장을 보고 언급해야 한다니.

여기서는 다른 역사관련 블로그에서 곳에서 염려해온 인물 설정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문제의 장면이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일 골때렸던게 천추태후 스페셜에서 PD가 나와서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을 당시 성리학자들을 거론하며(후대 성리학자가 아니다.) 그 기록 자체가 사대 모화사상에 젖어 왜곡되었다는 투로 애기를 하고 있는데

초딩도 비웃을 근거다.

▶고려 성종(960년~997년))

▶성리학의 집대성자 송나라 주희(1130-1200)

▶성리학을 고려에 들여온 안향 (안향 1243년~1306년)

와~ 당시에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성리학을 배워왔나?

아니 수만번 양보해서 후대 성리학자들이 기록을 왜곡했다는 말을 잘못 말했다고 치자. 그럼 뭐 성리학은 사대모화사상만 핵심 내용인줄 아나?

드라마적 재미를 위한 왜곡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역사 그 자체의 왜곡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천추태후 여걸론을 내세우느니 그냥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애를 써보던가 이건 뭐.


시대 착오에 사실 왜곡

이 드라마 참 볼만 하겠다~

참고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록은 무식하게 멋대로 무시할 수 있는게 아니다. 무시하려면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와서 주장하던가 이건 뭐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놓고 매도하려 들다니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제대로 기록하고자 애를 쓴 선조들이 보면 진짜 열통 터질 일이 아닌가.

천추태후 (고려사 권88, 후비열전)

헌 애 왕태후 황보씨는 대종의 딸이니 목종을 낳았다.  목종의 나이 이미 18세나 되었으나 태후가 섭정하여 천추전에 거처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천추태후라고 불렀다. 그가 김치양과 간통하여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왕위계승자로 정하려고 하였다. 당시 현종은 대량원군으로 있었는데 태후가 그를 꺼려 억지로 승려로 만들어 삼각산 신혈사에 나가 있게 하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신혈소군'이라고 불렀는데, 태후는 누차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또 태후는 충신과 의로운 사람들을 꺼렸으므로 죄없는 신하들을 많이 모함하였으나 목종은 금하지 못했다. 12년 정월 천추전에 화재가 나서 태후는 장생전으로 옮겨 거처했으며 후에 강조가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태후의 친척들을 섬에 귀양 보냈으며 또 사람을 시켜 목종을 죽였다. 그래서 태후는 황주에 12년간 있다가 현종20년(1029) 정월에 숭덕궁에서 죽었는데 향년 66세였고 유릉에 매장하였다.
 

참고로 강조와 김치양은 고려사에서 '반역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덧글

  • 돈키호테 2009/01/01 23:16 #

    시간을 달리는 성리학자가 있나 봅니다.
  • 날거북이 2009/01/01 23:24 #

    ㄷㄷㄷ
  • 나아가는자 2009/01/02 10:42 #

    천추태후만 생각하면 짜증만 납니다. 동시대에 현종, 강감찬, 양규 등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택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천추태후를 택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 날거북이 2009/01/02 11:00 #

    맞습니다. 당시처럼 정세가 급박했던 시기는 좋은 소재를 주고 있는데 일단 고증은 큰가지부터 말아먹고 있어요.
  • 금린어 2009/01/02 11:36 #

    뭐 완전 소설로 역사와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가 있음, 이거 뽠타지임, 이라고 하고 막가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는데, 우리나라의 사극들은 왜곡은 할대로 하면서 '이거 근거 없는거 아니거든?' 하고 우기는게... 뭐랄까... 아주 더럽습니다.
  • 날거북이 2009/01/02 13:01 #

    그런걸 보면 이상한 자존심은 있는 모양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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