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에 아녀자와 행주치마는 없었다.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행주치마란 단어는 행주산성 전투(1592년)가 있기 한참 전인 중종 12년(1517)과 22년(1527)에 최세진이 각각 편찬한 <사성통해(四聲通解)>와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책 등에 이미 등장한다. 따라서, '행주치마'가 행주산성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민간어원설일 뿐이다.

이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주산성 전투에 아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날랐다.'라는 사실은 과거 교과서를 거쳐 지금까지도 진실처럼 회자되고 있다. 심지에 행주산성 대첩기념관의 기록화에도 아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나르는 모습이 버젓이 그려져 있다.


그뿐인가? 아직도 그러한 어원까지도 사실인양 인용되고 있다.

행주산성 전투에서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멩이를 날라다 주어 싸움을 도운 결과 파생된 “행주치마”의 단어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 2009년 3. 10 국방일보

그런데 어떤 기록을 보아도 행주산성에서 아녀자가 돌을 날랐다는 기록은 없다.

정황으로 보아서 긴박한 전투중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럼 정황을 따져보자.

권율이 관군과 승병으로 이루어진 4천 남짓한 병력으로 행주산성에 주둔하게 된 계기는 명나라의 본격적인 참전이었다. 평양을 탈환한 조명 연합군은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서두른다. 일본군의 전력을 얕잡아본 이여송은 친밀한 부하제장들의 전공을 높여주기 위해 화포병 없이 기병을 주축으로 한양으로 진격하다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하여 패퇴한다. 이때가 1593년 1월 23일이었다.

그러나 이여송은 이에 대해 확실히 말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결국 조선조정에 패전소식이 들려온 것은 2월 5일이었다.

권율은 이 사실은 모른채 남하하는 명나라 병력과 협응하기 위해 한강을 건너 병력을 배치시킬 계획을 세우고 지리를 물색한다. 권율은 후방에 부대를 두고 정병 4천을 선발하여 행주산성을 주둔한후 흙을 쌓고 목책을 두르는 등의 일을 한다. 행주산성에서의 전투는 2월 12일날 시작되었고  후에 부족한 물자는 한강 수로를 통해 충청수사 정걸이 조달했다.

즉, 행주산성은 군대가 상시 주둔하거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전략적 목적으로 임시 주둔한 거점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아녀자가 끼어 있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전투 경과를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이번의 전투에서는 적이 화살을 맞아 죽는 자가 줄을 잇는데도 오히려 진격만 하고 후퇴하지를 않았으니 이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전투시에는 돌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곳에서는 돌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군사들이 다투어 돌을 던져 싸움을 도왔습니다.”

즉 주위에 돌이 많아서 괜히 누군가 수고스럽게 돌을 실어 나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권율이 행주산성에 진을 친건은 도박과도 같았다 교착중이었던 서울 이남의 전선에서 비수와 같이 걸쳐진 권율의 진군을 일본군은 묵과할 수 없었고 북쪽으로부터의 명군에 대한 위협은 막아낸 후였기에 병력을 집중시킬수가 있었다.

의문 : 그렇다면 혹시 인근 주민들이 행주산성에 뒤늦게 올라가 합류한 것은 아닐까?

권율이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왜군이 대거 집결하는 긴급한 마당에 구태여 산성으로 올라갈 이들이 있을까? 아녀자들의 합류는 오히려 전투시 방해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클 뿐이다. 인근 주민들에게 부역을 시키기 위해 불렀을 가능성도 배제된다. 목책을 쌓는 등의 부역은 승군이 자주 맡아 하는 부역이었고 실제 이를 위해 권율은 승군을 데리고 간 것이었다. 취사는 화병(火兵)이 맡아서 했다.

게다가 행주산성 전투가 끝난후, 왜군이 재차 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권율은 급히 파주로 병력을 이동시킨다. 여기서도 인근 주민들과 함께 이동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의문 : 그렇다면 아녀자들이 돌을 날랐다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행주산성의 이야기에서 부각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바로 '민관군 합동 작전'이라는 개념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1970년 행주산성을 복원 준공한 이는 다름아닌 박정희였다.

아녀자가 행주산성에서 돌을 날랐건 안 날랐건 역사적인 큰 테두리에서 변하는 건 없다. 하지만 조작된 신화 이면에 있는 것은 한번 생각해 봄직 하지 않는가?

덧글

  • 신시겔 2009/05/16 10:26 #

    아녀자들이 돌날랐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이미 알았는데, 글쓰신 분의 마지막 두 줄 해석이 인상깊군요.
  • 날거북이 2009/05/16 10:30 #

    인상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rumic71 2009/05/16 10:32 #

    그럼 행주치마의 진짜 어원은?
  • 날거북이 2009/05/16 10:45 #

    어원자체가 불확실한 단어인데 '행자'들이 두르던 앞치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더군요. 이 또한 믿음은 크게 가지 않습니다.
  • 팬티팔이녀 2009/05/16 10:42 #

    그러면 결국 한국여자들이 국방에 도움됬던건 유관순밖에 없네요...
  • 날거북이 2009/05/16 10:45 #

    헉, 그런 의미로 쓴 글은 아닌데요 -_-;;
  • 라세엄마 2009/05/16 15:17 #

    그렇게 말하자면 유관순이 아니라 논개겠죠'ㅅ'
  • 천지화랑 2009/05/17 08:34 #

    지금 한국전쟁 여군 무시하심?
  • 나인테일 2009/05/16 16:07 #

    뭐 국방일보는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요. 병사들 정신교육을 위해서라면 고증따윈 일단 접어두고 쓸만한 떡밥은 죄다 갖다 붙이는 곳이니 말이지요..(....)
  • 날거북이 2009/05/16 20:36 #

    맞는 말씀 ^^
  • 카니발 2009/05/16 16:45 #

    확실히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서 '어? 근데 저런 상황에 아녀자들이 있을 수 있나?'싶긴 했지요.



    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박시백 화백이 아녀자들은 그렸다는게 아니라 내용에서 서술된 상황상...


    궁금점 풀고 가네요 =ㅁ=
  • 날거북이 2009/05/16 20:37 #

    넵. ^^
  • 액시움 2009/05/16 17:25 #

    걍 관민협동으로 외적 몰아낸 거 교훈 삼아서 민담으로 퍼진 걸 뭘 조작된 신화까지야
  • 날거북이 2009/05/16 20:38 #

    그럴수도 있겠군요. ^^
  • 천지화랑 2009/05/17 08:35 #

    1950~60년대에는 행주치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ㅁ-;;
  • 날거북이 2009/05/17 14:05 #

    한번 추적해 봄직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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