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10 비차(飛車)의 정체(1)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2000년 4월 KBS의 역사 스페셜에서는 '조선시대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는 제목으로비차(飛車)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한 바 있다.

방송은 먼저 임진왜란 당시 비차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정평구와 200년뒤의 윤달규가실존인물이냐는 점을 따지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행글라이더 형태의 비차를 만들어 실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이방송에서 정평구, 윤달규가 실존인물이라는 점은 고증했지만 비차를 직접 만들어 날리는 과정에서는 의문이 많다. 비차에 관심이있는 사람들이라면 조선조 철종 때의 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槁)의 비차변증설(飛車辯證說)편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포위된 곳에서 30리를 날아 자신의 친구를 탈출시키는 데 사용됐다'는 기록과 함께 '비차는 4명이 탈 수있고 따오기 같은 모양으로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일어나 공중으로 떠오르고 능히 100장(300m)가량을 날 수 있는데양각풍(회오리 바람)이 불면 앞으로 나갈 수 없고 광풍이 불면 추락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측 기록에도 비차에 대한기록이 있다고 하지만 확실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외 실학자 신경준의 여암전서와  정평구 후손들의 족보속에서도 비차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槁) 바로가기


임진왜란 이야기를 하면서 왜 비차에 대한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비차는 거북선, 비격진천뢰, 화차 등과 더불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과학력을 평가할 수 있는 유산이기때문이다. 비록 설계도도 없이 기록만 남아 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리고 외면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공군사관학교 항공기 박물관에 있는 비차모형


공군사관학교 항공기 박물관에 있는 비차모형은 역사스페셜에서 고증된바 있는 행글라이더 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비차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다. 이 모형대로라면 억지로 두명은 탈 수 있으나 4명이 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일어난다.'는 점과도 맞지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야사에는 정평구가 이 비차를 타고 식량을 나르고 왜군들 위로 화약을떨어트려 사기를 꺾었지만 연이은 출격 끝에 조총에 맞아 추락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던 뭔가를 실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는 것을 봐서도 비차는 결코 행글라이더 형이 아닐것이다.

이규경의 다시 한번 기록을 돌이켜 보자면

-비차를 만들어 네 사람을 태우고, 곡형으로 풀무를 만들어 배를 두들겨 바람을 일으켜 떠서 공중에 올라가 백길 쯤 다닐 수 있게 했지만 겨우 각풍을 만나도 전진하지 못하고 떨어지며, 광풍을 만나면 갈 수가 없다.

-그 기술을 모방하려면 먼저 하나의 수레를 만들어 나르는 연처럼 깃과 날개를 달고 그 속에 기구를 설치하고 사람이 타서, 사람이헤엄치는 것처럼, 또는 자벌레가 굽혔다 폈다하는 것처럼 하여 바람과 기운을 내게 한다면, 두 날개가 자연히 날아서 한 순간에천리를 가는 형세를 짓는다.

-줄로 가로 세로 엮어 매어 신축성이 있게 하고, 비차속에서 풀무질하여 규칙적으로 센 바람을 일으켜 대기위에 뜨게 한다


그러나 이규경의 기록은 자신이 소문으로 들은 것을 기술 한 것이지 이를 시연한 것을 본 것은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기록의 신빙성이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 기술을 모방하려는 데로 제작한다면 하늘을 날 수가 없다. 그저 행글라이더 형태로 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행글라이더 형태는 앞서 말했듯이 한계가 분명히 있다. 더구나 행글라이더의 필수 조건인 높은 곳에서 이를 띄운다는 기록도 없다.

그렇다면 비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