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거북선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요즘도 칠천량 해전으로 거북선이 가라 앉았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거제도 북서쪽 칠천도 앞바다를 뒤지고 있다고 한다. 칠천량 해전은 거북선, 판옥선 160척이 격침되고 수군 1만명이 수장된 곳이라고 소개가 되어있다.

지자체 예산과 각종 성금으로 시행되는  이 발굴에 나선 이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헌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 가능성을 따져 보았을때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해당 기사를 보니 거북선 발견을 다짐하며 '스페인 군함도 통째로 인양되었고 원나라 선박도 인양된 선례가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약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들은 풍량에 휩슬려 가라앉아 버린것이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소실당한 선박은  불에 타버렸거나 나포, 산개후 방치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동원된 전선이 160척인지는 두루뭉실한 셈하기에 비롯된 것이고 당시 전투에 참여한 거북선은 3~4대를 넘지 않았을거라고 추정된다. 후의 자료를 보면 칠천량 해전당시 판옥선과 거북선을 모두 합하면 100척 정도 되었으리라 예상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1년 비변사 회의에서 나온 발언을 보자.

주사(舟師)의 일에 있어서는 안으로 묘당(廟堂)이 규획하고 밖으로 체찰(體察)이 경영하고 있으니 참으로 논의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저번에 남쪽으로 가서 직접 들어 보니, 정유년 이전에는 많은 수효의 주사와 판옥선(板屋船) 1백 척으로 삼도(三道)가 힘을 합쳐 함께 한산(閑山)에 머물러 있어 세력이 튼튼하였기 때문에 저 적들은 침범할 수 없는 형세였고 우리 나라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그 당시 패배한 이유는 주사에 있지 않고 지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160척이라는 숫자셈은 초탐선과 같은 작은 선박까지 합한 수로 보아진다.(초탐선은 명량해전대도 32척이 있었다.) 따라서 설사 거북선이 3~4척보다 더 많았다고 해도 일단 칠천량에서 발견될 확률은 떨어진다.

칠천량 전투는 편의상 해전으로 부르지만 해상에서 끝난 전투는 아니다.

“한산에 거의 이르러서 칠천도(七川島)에 도달했을 때가 밤 2경이었는데 왜적은 어둠을 이용하여 잠입하였다가 불의에 방포하여 우리 전선 4척을 불태우니 너무도 창졸간이라 추격하여 포획하지도 못하였고,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에는 이미 적선이 사면으로 포위하여 아군은 부득이 고성으로 향하였습니다. 육지에 내려보니 왜적이 먼저 하륙하여 이미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우리 군사는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  유성룡

바로 논란도 많고 악명도 높은 원균의 육지 상륙 도주 명령으로 인해 조선 수군은 괴멸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 불에 타지 않은 판옥선은 어찌되었을까?

선전관 김식(金軾)이 한산(閑山)의 사정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입계하였다.
 
“15일 밤 2경에 왜선 5∼6척이 불의에 내습하여 불을 질러 우리 나라 전선 4척이 전소 침몰되자 우리 나라 제장들이 창졸간에 병선을 동원하여 어렵게 진을 쳤는데 닭이 울 무렵에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왜선이 몰려 와서 서너 겹으로 에워싸고 형도(刑島) 등 여러 섬에도 끝없이 가득 깔렸습니다. 우리의 주사(舟師)는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후퇴하였으나 도저히 대적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고성 지역 추원포(秋原浦)로 후퇴하여 주둔하였는데, 적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마침내 우리 나라 전선은 모두 불에 타서 침몰되었고 제장과 군졸들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모두 죽었습니다. 신은 통제사 원균(元均) 및 순천 부사 우치적(禹致績)과 간신히 탈출하여 상륙했는데, 원균은 늙어서 행보하지 못하여 맨몸으로 칼을 잡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신이 달아나면서 일면 돌아보니 왜노 6∼7명이 이미 칼을 휘두르며 원균에게 달려들었는데 그 뒤로 원균의 생사를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경상 우수사 배설(裴楔)과 옥포(玉浦)·안골(安骨)의 만호(萬戶) 등은 간신히 목숨만 보전하였고, 많은 배들은 불에 타서 불꽃이 하늘을 덮었으며, 무수한 왜선들이 한산도로 향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거의 모든 전선이 소실된 것 같은데 그 이후의 기록을 보면 수군이 뭍으로 상륙해 도주하는 바람에 왜군에게 나포된 전선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산해는 아뢰기를,
 
“지난번 패전 때 우리의 배가 적에게 나포되어 간 것이 많고 ...... (1600년 선조와 이산해의 인견에서 나온말)
 
 여기에 권율의 군관 최영길의 칠천량 해전 후 원균 목격 보고를 믿는다면(물론 논란이 많은 얘기다.) '사량(蛇梁)에 도착한 대선(大船) 18척과 전라선(全羅船) 20척은 본도에 산재해 있다'고 원균이 말하는데 이 전선이 수습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니 그대로 방치후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100여척의 전선(거북선, 판옥선)중 절반은 불에 타버렸고 13척은 명량해전에 참가, 18척은 해안가 방치후 소실, 10척 내외는 나포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실제 칠천량 전투에서 조선수군은 포위망 속에서 제대로 싸우기 보다는 각지에 산개해 뭍으로 올라가 살길을 찾으려 했고 왜군의 특기인 해상 단병 접전이 힘들었던 거북선의 경우에는 해안가 방치후 소실되어 버렸을 18척에 있었을 공산이 크다고 생각된다.

덧글

  • Luthien 2009/09/05 11:45 #

    간양록을 보면 나포 수효가 더 많을 것 같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배가 백척에 달했다던가...그런 내용도 있으니까요.
  • 날거북이 2009/09/05 11:59 #

    예 그렇지요. 간양록을 미처 체크 못했군요.
  • hotdol 2009/09/05 21:05 #

    그래도 당시의 판옥선이나, 확률적으로는 더 떨어지겠지만 거북선을 발견할 가능성이 제일 큰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 날거북이 2009/09/05 22:50 #

    정말 판옥선이라도 발견된다면 큰 희망을 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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