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지진기록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 기록은 상당히 많다.('지진'으로 검색하면 8808건이 뜬다.) 지진이 있으면 그 고을이나 궁정에서는 해괴제(解怪祭)란 제사를 열었다. 실록의 지진기록은 아주 많지만 그 중 몇 가지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태종 : 집이 흔들리는 규모의 지진이 몇번 있었다.
 
태종 31권, 16년(1416) :  경상도 안동(安東)·청도(淸道)·선산(善山)·보천(甫川)·의성(義城)·의흥(義興)·군윈(軍威)·보성(甫城)·문경(聞慶)과 충청도 충주(忠州)·청풍(淸風)·괴산(槐山)·단양(丹陽)·연풍(延豐)·음성(陰城)에 지진(地震)이 있었는데, 안동에서 더욱 심하여 가옥들의 기와가 떨어졌다.
 
세종 : 큰지진은 없었지만 작은 지진이 무척 잦았다 오죽하면 왕이 이런 말을 했을까

세종 56권, 14년(1432) :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진(地震)은 천재지변(天災地變) 중의 큰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전(經傳)에 지진을 번번이 기록하였으나 (중략) 우리 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경상도에 더욱 많다. 지나간 기유년에 지진이 경상도로부터 시작하여 충청·강원·경기의 세 도(道)에 파급(波及)하였다. 그날 나는 마침 책을 보느라고 지진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가 서운관(書雲觀)의 계달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비록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일이 없으나, 지진이 하삼도(下三道)에 매우 많으니 오랑캐의 변란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된다.”
 
연산 40권, 7년(1501) : 강계(江界)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소리가 천둥 소리와 같았고 마룻대와 들보가 모두 울렸다.

연산군은 지진 보고 듣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지진을 이유로 들어 신하들이 연회를 중단할 것을 여러번 간청한 일도 있었기 때문일까.

연산 63권, 12년(1506) : (전략) 왕이 충공도(忠公道)의 지진(地震) 서장(書狀)을 보고 전교하기를,  “이런 재변은 상달하지 말라고 이미 전교를 내렸는데, 정원은 미쳐 반포하지 않았느냐?”하였다.
 
중종때는 기록으로 짐작컨데 조선시대 최대 지진이 발생했다.

중종 33권, 13년(1518) : 유시(酉時)에 세 차례 크게 지진(地震)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城堞)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고로(故老)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八道)가 다 마찬가지였다.

이에 그날 밤 진행된 긴급 어전회의에서 이 일을 논하는데......

중종 33권, 13년(1518) :  전교하기를,
 
“이번에 있은 지진은 실로 막대한 변괴라 내가 대신들을 불러 보고자 하니 시종(侍從)은 그들을 부르라.”
 
하였다. 정원(政院)이 예관(禮官)의 장(長)도 아울러 부를 것을 청하였다. 예조 판서 남곤 등이 먼저 입시하니, 상이 이르기를,
 
“요즈음 한재가 심한데 이제 또 지진이 있으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재앙은 헛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연유가 있는 것인데, 내가 어둡고 미련해서 그 연유를 알지 못하겠노라.”
 
하매, (중략)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늘의 변괴는 더욱 놀랍고 두렵다. 내가 사람을 쓰는 데 항상 잘못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있는데, 친정(親政)이 끝나자 곧 변이 일어났고 또 오늘의 친정은 보통 때의 친정과는 다른데도 재변이 이와 같으니 이 때문에 더욱 두려운 것이다.”
 
하였다. 얼마 있다가 또 처음과 같이 지진이 크게 일어나 전우(殿宇)가 흔들렸다. 상이 앉아 있는 용상은 마치 사람의 손으로 밀고 당기는 것처럼 흔들렸다. 첫번부터 이때까지 무릇 세 차례 지진이 있었는데 그 여세가 그대로 남아 있다가 한참 만에야 가라앉았다. 이때 부름을 받은 대신들의 집이 먼 사람도 있고 가까운 사람도 있어서, 도착하는 시각이 각각 선후(先後)가 있었으나 오는 대로 곧 입시하였다. 영의정 정광필이 아뢰기를,
 
“지진은 전에도 있었지마는 오늘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신 등이 재직하여 해야 할 일을 모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입니다.”
 
(중략)

이때에 밤이 이미 2경(更 오후 9시~11시))이었으므로 대신이 모두 유문(留門 : 열어 둘 때가 아닌데도 대궐문을 열어 두는 일) 으로 나갔다. 대간이 합사(合司)하여 광화문(光化門) 밖에 모여서 면대(面對)하기를 청하니, 곧 유문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대사헌 고형산(高荊山)·대사간 공서린(孔瑞麟) 등이 입시하자, 상이 이르기를,
 
“오늘의 지진은 보통 변괴가 아닌지라, 처음부터 매우 놀라운 나머지 곧 대신을 불러서 물어보았거니와, 대간이 합사하여 와 있다 하기에 잘못된 일이 무엇인가를 듣고자 하여 이제 소대(召對)하는 것이다.”
 
하매, 고형산이 아뢰기를,
 
“오늘의 지진은 고로(古老)들도 모두 평생에 들어 보지 못한 것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깔려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불안을 느끼고 있으니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중(司中)의 뜻은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쇠하면 이런 재변(災變)이 생기는 것이다 하고, 상께서는 군자(君子)를 부르고 소인(小人)을 물리치려 하니 또한 지극한 일입니다. 그러나 소인이 다 물러가지 아니하고, 몰래 화심(禍心)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략)

이후에도 수많은 지진기록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계로 내어보면 대략 백년에 한번씩은 한반도에 지진이 자주 지나가는 걸로 통계가 나온다고 한다. 

덧글

  • 8비트 소년 2010/02/10 10:30 #

    미신이지만, 통치자가 자신의 허물을 돌아볼 계기를 갖는다는건 좋은 일이었겠지요.

    MB뿐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과연 저런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 날거북이 2010/02/10 12:51 #

    연산군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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