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크기 변화 - 1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일단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창안한 거북선은 두갈래로 갈린다. 충무공 전서에 따르면

명나라 화각의 해방의에 이르되 '조선의 거북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건 퇴조 때이건 마음대로 간다.'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공의 창제한 배를 가리킨 것이다. 그런제 모두 아울러 그 치수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한 것이 없다. 지금 통제영 거북선이 대개 충무공의 옛 제도에서 된 것이나 또한 약간 치수의 가감은 없지 않다.충무공이 이 배를 창제한 곳은 실로 전라좌수영이었는데 이제 좌수영 거북선이 통제영의 배의 제도와 약간 서로 다른 것이 있기로 좌수영의 제도를 아래에 붙여 써 둔다.

라며 익히 알려진 이 그림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그럼 임진왜란 후 거북선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막연하나마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추정하는 수 밖에 없다. 임진왜란 당시와 그 후  거북선의 크기는 판옥선과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206권, 39년(1606)
거북선[龜船]은 전쟁에 쓰기는 좋지만 사수(射手)와 격군(格軍)의 숫자가 판옥선(板屋船)의 1백 25명보다 적게 수용되지 않고 활을 쏘기에도 불편하기 때문에 각 영(營)에 한 척씩만을 배치하고 더 이상 만들지 않고 있다.


그 후 만들어지는 거북선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

숙종 5권, 2년(1676)
무신(武臣) 이지달(李枝達)이 말하기를,
“거북선은 비록 역풍(逆風)을 만날지라도 능히 앞으로 나아가니, 방패선(防牌船) 을 거북선으로 만들어서 선봉(先鋒)을 삼는다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방패선의 크기는 좌우현에 4개식의 노를 건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에 비하면 그 크기가 줄어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탑승인원도 80명 정도로 추정되는바 판옥선보다 작았다.

-방패선, 그 뒤로 거북선이 따르고 있다. 그림에는 방패선과 거북선 모두 좌우현에 3개식의 노를 가지고 있다.


당시 대형 전선을 만들지 못하고 거북선의 크기가 줄어든 것은 인원확충, 목재조달의 어려움 등 재정적인 어려움이 컷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란후의 기사를 보면 나대용의 건의로 거북선을 대체한 창선을 개발하는가 하면 후에는 심지어 기존 전선의 목재를 뜯어 방패선으로 고치는 경우도 있으니 오죽하랴. 위에 제시된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삼도 수군 조련 전진도에 나오는 거북선은 그 때가 1741~1800년경에 해당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등장하는 거북선은 모두 40여 척이나 된다. 혹시 과장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고 그 전에는 각 영(營)에 한척씩만 배속될 정도였던 거북선의 수가 크기가 방패선 정도로 작아지면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줄어든 거북선은 후에 그 크기가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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