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차는 행글라이더와 동일한 원리를 가졌다. 항공군사전문박물관에 그 모형이 있다.
: 항공군사 전문박물관에 행글라이더 형 비차 모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비차모형은 2000년 4월 방송된 KBS의 역사 스페셜 '조선시대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편에서 고증 재현한 비차 모형일 뿐이다. 당시 복원팀은 3개월 동안 회의와 작업을 거쳐 모형을 만들어 짧은 거리나마 비행까지 성공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기록에 나온 풀무나 비행방식, 4인 탑승, 식량 운송 같은 내용과는 거리가 먼 복원이었다. 기껏해야 한명이 바람에 의지해 난 것이 전부였다. 비차의 실제 여부를 떠나서라도 기록과는 전혀 다른 복원이었다.
기록을 볼 때 비차는 오히려 열기구에 가깝지 않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열기구라면 행글라이더와는 달리 4명이 탈 수 있으며 '풀무질을 해 바람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을 지펴서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내 상승한다는 것을 표현한 기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역시 추정에 그칠 뿐이다.
3. 최남선은 비차를 만든 정평구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으로 선정한 바 있다.
: 일단 최남선이 말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이라는 것부터 근거가 없다. 다만 최남선이 비차가 언급된 문헌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발견한 사실이 와전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1930년, 최남선은 세상에서 잊힌 채 군밤장수의 포장지로 사용되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발견해낸 바가 있었다.
실존에 대한 커져가는 의문
임진왜란 당시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언급된 비차의 실존여부는 여러모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평구가 비차를 타고 활약한 전투도 1차 진주성 전투인지 2차 진주성 전투인지가 불분명한 상태로 정보가 흘러 다니고 있다.
족보확인으로 실존인물임에는 증명이 된 정평구에 대해서도 생몰연대가 불확실하다. 생몰년미상이라는 자료에서부터 1566-1624년 또는 1593년 진주성에서 전사했다는 설도 있다. 관련설화도 있는데 비차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거짓말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내용이다.
큰 가뭄이 든 어느 때였다. 다행히 늦은 비가 내려서 사람들이 겨우 모를 내고 있는데 정평구가 패랭이를 비스듬하게 쓰고 논두렁을 부지런히 뛰어가는 것을 본 시골 양반들이 농을 걸었다.
“어이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 자네 거짓말을 그렇게 잘 한다는데 어디 거짓말이나 한 번 해봐! 하하하!”
정평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갈 길만 갔다. 그러자 양반들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을 고깝게 생각하고 불호령을 내리면서 꾸짖었다. 정평구는 자기를 희롱하는 시골 양반들에게 모욕을 당한 것에 순간 울컥했지만 금방 꾀를 생각해 냈다.
“가뭄 뒤 모내기보다 정말 더 급한 일이라서 그렇소.”
궁금해진 시골 양반들은 가뭄 뒤 모내기 보다 더 급한 일이 뭔지 궁금해 겸손하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정평구가 책망하는 말투로 말했다.
“어 거! 때와 장소를 가려서 농을 해야지 남은 급한 공무를 띠고 뛰어다니는데 너무들 하시네!”
정평구는 금해 하는 시골 양반들 곁으로 다가오더니 불호령을 한 시골 양반 곁으로 다가서서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절대 비밀이니 당신만 알고 계시오. 나는 지금 가뭄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정상을 참작하여 내일 오전에 사또께서 쌀을 기민에게 준다하여 공무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느라 이렇게 바쁘다오.”
시골 양반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왠지 진지한 정평구의 태도와 평소에도 큰 가뭄 뒤에는 휼민하는 사례가 있는 지라 정평구의 말을 믿고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동헌마루로 몰려갔다. 물론 이는 정평구의 거짓말이었고 마을 사람 모두가 속아버렸다. 시골 양반들이 노발대발하여 따지자 정평구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멀쩡한 나더러 거짓말을 한 번 해보라고 성화를 해서 내가 거짓말을 한 번 해 본 것인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겁니까?”
시골 양반들은 그 말에 대꾸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평구에게 ‘앞으로는 자기같이 선량한 사람에게 거짓말하도록 추동하여 거짓말쟁이를 만들지 말라.’ 는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출처 :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 김제 향토학자 정진형 채록분 재편집
정평구에 대한 이런 거짓말과 속임수에 대한 설화는 많은 편이다. 왜군을 속임수로 혼내주는 설화도 있지만 비차와 무관한 내용이 전해질 뿐이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비차를 만들었다는 정평구와는 무관한 동명이인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아스러울 정도로 비차의 실존여부가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차를 다룬 소설도 있었고 심지어 항공군사 전문박물관에 실체가 불명확한 비차 재현 모형도 있으니 오죽한가. 이는 과거 선조들의 과학 기술력을 좀 더 확대포장하고 싶은 민족주의적 욕구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본 수군장 구키가 임진왜란 이전부터 철갑선을 만들어 전장을 누볐다는 얘기를 진실인양 써놓은 경우로서 알 수 있다.
지금으로서 추정이 가능한 사실은 사람이 타고 하늘을 나는 무엇인가가 조선시대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