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최초의 원거리 무기 - '돌' 무기들

무기로서의 돌은 두가지로 얘기될 수 있다.

1. 무기 재료로서의 돌
2. 무기 자체로서의 돌

여기서는 당연히 2번 '무기 자체로서의 돌'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돌을 들어 내려치는 동작이 다였겠지만

자신에게 접근하기 전에 돌을 던져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보통 운이 좋아서는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는 없다. 잘해봐야 무력화시킬수 있는 정도랄까.

연습을 한다손 치더라도 집단 투석이 아닌 혼자서는 칼같은 제구력과 불꽃같은 강속구에 강철같은 어깨가 아니고서야 치명상도 입힐 수 없었고 거리도 길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것이 바로 가죽끈이나 천에 돌을 싸서 돌린 후 던지는 투속구(슬링 Sling)이었다.


이는 비교적 적은 연습으로 돌을 날릴 수 있는 효율적인 무기였고 평지에서의 전투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이 간단하고 원시적인 무기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엄청나 때로는 궁병을 압도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원거리 무기 자체를 등한시한 중세암흑 시기에 이 투석구의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투석군은 삼국시대부터 적극적으로 운영되었고 단오날 석전(石戰)놀이는 때로 사망자가 생기는 불상사가 생길정도로 치열했다.(이는 집단 소요를 우려한 일본 총독부에 의해 일제시대때 금지되었다.)


태조3년  : 돌 던지는 놀이꾼들을 모집해 척석군이라 명명하다.
태조6년 : 전 판사 정점에게 척석군과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잡게 하다.
태조7년 : 궁성 남문에 거둥하여 척석놀이를 구경하다. 죽고 상한 사람이 많았다.
세종3년 : 상왕과 함께 종루에서 석전을 보고 이긴 척석군에게 상을 주다.


태종1년에는 석전과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에서 사헌 시사(司憲侍史) 김효공(金孝恭)을 탄핵하였다. 국속(國俗)에 5월 5일에 넓은 가로(街路)에 크게 모여서 돌을 던져 서로 싸워서 승부(勝負)를 겨루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석전(石戰)’이라고 한다. 시사 김효공이 길을 벽제(辟除)하고 가는데, 돌을 던지던 자가 피하지 않았다. 복례(僕隷) 정리(丁吏)를 시켜 잡으려고 하였으나, 잡지 못하고, 어떤 자가 정리(丁吏)를 치고 도망하였다. 문하부(門下府)에서 왕명을 욕되게 하였다 하여 탄핵한 것이었다.


이 말인즉 석전자체가 왕명으로 시행된 것이기에, 자신에게 돌이 날아왔다고 화를 낸 관리가  되려 탄핵을 당하는 지경에 몰리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척석군(또는 석척군)은 세종11년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폐지되게 된다.



판부사(判府事) 허조(許稠)가 계하기를,

“단오날의 돌던지는 놀이[石擲戲]는 옛날부터 있었던 까닭으로 국가에서 이를 금하여도 능히 그치지 못했습니다. 태종(太宗) 때에 사신이 보기를 요구하므로 인하여 병조(兵曹)에서 날랜 사람을 모아 석척패(石擲牌)를 만들어 해마다 단오날에 종루가(鍾樓街)에 모여서 서로 싸워 용맹을 겨루다가 몸을 상하여 목숨이 끊어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신(臣)은 또한 강하고 사나운 무리들이 서로 붕당(朋黨)을 맺어, 혹시 뜻하지 않은 변고가 발생할까 두려우니 국가에서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인데, 어찌 앉아서 보기만 하고 금하지 않겠습니까. 석척군(石擲軍)을 폐지하기를 청하오니, 만일 사사로이 서로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유사(有司)가 엄중히 금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해마다 사신이 이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으로 마지 못하여 그렇게 한 것인데 반드시 이를 보고자 한다면 어찌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허조가 대답하기를,

“만일 이를 보고자 한다면 임시로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패(牌)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고, 즉시 대언(代言) 등에게 명하기를,

“빨리 석척군(石擲軍)을 폐지하고, 그 패기(牌記)를 회수하라.”

하고, 또한 병조로 하여금 금지하게 하였다.



 단지 이런 이유에서일까? 그보다도 돌이라는 무기는 사람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으면서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위현장에서까지 투석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무기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