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14 논개를 둘러싼 4가지 논쟁(2)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부산 순절도


세 번째 논쟁은 한겨레21에서도 98년도에 제기된 바 있는데 논개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장수인 게야무라 로쿠스케와 논개를 일본에서 부부처럼 나란히 사당에 모신 사건이다. 게야무라는 칼을 잘 쓰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 게야무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안타깝게 여긴 우에쓰카라는 일본인이 진주 유지들과 시장의 도움까지 받아 76년에 게야무라와 논개를 모신 사당인 '보수원'을 일본땅에 준공시키며 합동진혼식까지 열었던 사실이 있었다. 물론 진주 시장과 유지들은 우에쓰카의 행동을 친선활동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그 후의 일은 거의 역사적인 능멸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었다. 우에쓰카는 진주에서 가져온 돌과 당시 논개의 영정을 그대로 모사한 그림으로  일본 히코산 보수원에 논개의 사당을 세운다.(우에스카가 게야무라의 후손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게다가 이에 한술을 더떠서 일본의 사당에서는 '전쟁중에 게야무라를 만난 논개가 전쟁이 끝난 뒤 게야무라를 따라 일본에 건너와 함께 해로하다 죽었다'는 얘기까지 만들어내었고 사당을 찾는 일본인들은 '부부관계를 좋게 만들고 아기를 점지해주는 신'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우에스까는 중이 되어 보수원 보전회를 만들기까지 한다.1998년네는 최경회 장군의 후손들이 일본에서 논개의 영정과 초혼식을 올린 묘비를 반환해  가기도 했다.

보수원 홈페이지에는 이런 일에 대한 기록은 없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보수원 홈페이지 : http://www.houjyuin.org)

네 번째는 논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설'인데 논개(論介)라는 이름이 당시 조선에서 쓰여지던 이름이 아니라 일본식 이름이라는 설이다. 김문길 교수가 제기한 이 설에 따르면 말잘하는 이라는 뜻이 담긴 논(論)자와 여자이름에 붙이는 개(介)를 붙여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이 만든 이름이라는 것이다. 논개의 성씨는 '주'씨로 알려져 있는데 유독히 '논개'로만 불린다는 점에서 의문은 출발한다. 그럼 논개는 기명(妓名) 즉 기생의 이름이 아니었나? 이 설은  그냥 설로만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조정에서 내린 의암부인이란 호칭을 안 쓰고 논개로만 불리는 것은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그 밖에도 향토 사학자가 제기한 게야무라 가상인물설도 있지만 그는 분명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에서 봉록을 받은 기록이 있는 장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