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궁(long bow)의 위력은 어느정도일까? 무기들


-장궁병의 활약과 함께 기사도 시대의 종말을 알린 크레시 전투(1346년)


장궁에 대한 블로깅들을 보면 흔히 알려져 있는 크레시 전투에 대한 얘기보다는 장궁의 위력에 대한 의구심을 다룬 글들이 눈에 띕니다. 한마디로 '과대포장이다!'라고 말하고는 하죠.

그런데 문제는 백년전쟁이 벌어진 14세기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장궁이고 석궁이고 간에 활이라는 무기 자체를 과소평가하고 심지어는 이를 다루는 사람들까지 천대시 했다는 점입니다.

한가지 재질의 장궁보다 뛰어난 복합궁 사용을 유럽에서 하지 않은 것(석궁병은 용병으로 운용하고 귀족들은 사냥용으로 석궁을 사용하기도 했지만)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당시 영국에서 장궁병들을 대거 동원한 것은 전술적인 인식보다는 자금사정이 프랑스에 비해 열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말을 타고 긴창을 든 기사끼리의 대결을 영국측도 원했을 겁니다.

-아쟁쿠르전투(1415년)기록화


아쟁쿠르 전투에서는 이 장궁병의 실체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이 영국 장궁병들은 활로서 프랑스 기사들을 제압한게 아니라 뻘밭속에서 육중한 갑옷을 입고 허우적 거리는 프랑스 기사들을 포위하고는 말에서 끌어내려 도살하는 것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끕니다. 사실 장궁에서 발사되는 화살로 갑옷을 제대로 꿰뚫기는 힘들었습니다만 말만 쓰러트려도 바닥에 널부러진 기사를 제압하는 건 효과적이었죠.

결국 장궁이라는 무기는 복합궁과 조립식 활처럼처럼 무기 그 자체의 효용성과 위력보다는 역사적인 상징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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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라 예상돼. -백년전쟁 당시 크레시 전투 : 프랑스 기사들이 영국 장궁병의 화살 소나기속으로 뛰어들어갔지 적어도 1,200 마리의 말이 죽었을 거야. (이 블로그의 장궁에 대한 포스팅 참조) -워털루 전투 당시 네의 기병돌격 : 프랑스 기병대장 네의 무모한 기병돌격 뿐만 아니라 영국 기병대의 역공에서도 우리 말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어야만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