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16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대구에는 '대명동'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 지명은 명나라 장수 두사충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두사충은 이여송의 참모로서 조선에 와 전투에 참여했으며 일설에는 벽제관 패전의 책임으로 참수당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한다. 후에 수군 제독 진린의 수하로서 이순신 장군과도 친분을 쌓았다. 두사충은 사실 진린과의 처남이었다고 한다. 그의 후손들에 따르면 두사충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21대 후손이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두사충과의 친분으로 이런 한시를 지어 주기도 했다.

北去同甘苦  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함께하고
東來共死生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 하네
城南他夜月  성 남쪽 타향의 달빛 아래에서
今日一杯情  한잔 술로 오늘의 정을 나누세

이런 인연으로 인해 두사충은 이순신 장군 사후 묘자리를 봐주기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묘자리는 16년 후에 이장이 된다. 어쨌건 두사충은 전쟁이 끝나자 귀화할 의사를 밝혔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은 그에게 대구 시내 경상감영공원 일대를 주고 거기서 살도록 해 주었고 그 뒤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옮겨오게 되자 그는 자기가 받은 땅을 모두 내어놓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고향을 그리며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매년 명나라 천자가 있는 곳을 향해 배레를 올리며 동네 이름을 대명동(大明洞)이라고 붙인다. 두사충은 풍수지리에 상당한 일가견이 있는사람이었는데 전쟁에서 공까지 세운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한 것은 조선의 풍수에 매료된 탓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일부 풍수학계에는 이여송의 혈끊기 설화를 들어 두사충이 그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는 아니다.


- 그러고 보니 김충선에 이어 두사충도 귀화해서는 대구에 정착했군요. 당시 조정에서 이렇게 배려한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지는데 확실한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