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북한에서 제작한 '사육신' 이모저모 이러쿵저러쿵

-조선후기(고종)  당하관이 착용했던 단학흉배.


-연기


1. 카메라 워킹의 세련되지 못함과 배우의 대사 전달 능력을 문제삼는 의견이 많던데 내용을 중점으로 보고 볼륨을 높이면 그럭저럭 커버가 되는 수준. -_-


2. 수양대군 역을 맡은 배우의 카리스마가 돋보였음.


3. 조명애의 연기는 생각보다 별로...... 속칭 말하는 '발연기'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니.


-고증문제

4. 북한측에서 KBS에서 공수한 소품들을 고증에 맞게 나름대로 고쳤다고 함.


5. 삼지창(당파)는 왜 자꾸 나오는지. 그거 KBS소품인가? 그 시대 조선은 당파를 잘 안 썼다니깐!

당파는 임진왜란 중반 이후에 조선에서 사용된 무기입니다.


6. 의상을 보면 관리들의 흉배가 없는 게 눈에 띄는데 조선전기에는 관리들이 흉배를 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함.

자세히 얘기하자면 검소를 미덕으로 하는 풍조로 인해 흉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의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소개합니다.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억제하는 일은 정치하는 데 먼저 할 일입니다. 신이 항상 염려하기를, 국가에서 문(文)이 지나치는 폐단이 있는 듯한데, 단자와 사라는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며, 흉배는 더욱 준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또 존비의 등차는 이미 금대(金帶)·은대(銀帶)·각대(角帶)로써 제도가 정해졌는데 하필 흉배가 있어야 구별되겠습니까. 말하는 사람은, 야인들도 또한 흉배(胸背)를 착용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도리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핑계해 말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우리 나라는 본디부터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 왔으니, 어찌 야인(野人)들과 더불어 화려함을 다투고 부귀함을 자랑하겠습니까. 다만 조복만은 마땅히 정결해야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황희의 의논에 따랐다.


흉배를 하자는 의견에  검소한 황희정승께서 이를 반대하며 한 말입니다. 세종대왕은 황희정승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럼 조선시대 흉배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단종때부터 입니다.


의정부에서 예조(禮曹)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문·무관(文武官)의 상복(常服)에 문장(文章)2834) 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삼가 명(明)나라의 예제(禮制)를 상고하건대, 문무 관원의 상복(常服)의 흉배(胸背)에 꽃무늬[花樣]를 놓도록 이미 정식(定式)이 되어 있어서, 잡색 저사(雜色紵絲)와 능라사(綾羅紗)로 수(繡)를 놓거나 혹은 직금(織金)2835) 을 사용하여 각기 품급(品級)에 따라 꿰매어 붙였으니, 청컨대 이제부터 문무 당상관(文武堂上官)은 모두 흉배를 붙이게 하고, 그 꽃무늬는 대군(大君)은 기린(麒麟), 도통사(都統使)는 사자(獅子), 제군(諸君)은 백택(白澤)2836) 으로 하고, 문관 1품은 공작(孔雀), 2품은 운안(雲雁)2837) , 3품은 백한(白鷴)2838) , 무관 1, 2품은 호표(虎豹)2839) , 3품은 웅표(熊豹)2840) , 대사헌(大司憲)은 해치(獬豸)2841) 로 하고, 또 모든 대소인(大小人)은 백립(白笠)을 쓰고 궐문(闕門)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고증에 철저했다면 사육신 드라마 중간에 의관이 바뀌는 장면도 나올지 모르겠군요.


-분위기


7. 오래간 만에 보는 정통 사극 분위기.

개인적으로 그놈의 퓨전사극이랍시고 러브러브 라인 나오는 건 지겹습니다. 그런걸 더 좋아하시는 분도 많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