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선에 대해서는 이순신 장군을 신격화시켰던 박정희 정권시절 '이순신장군이 발명했다.'는 얘기가 우세하였다. 하지만 태종 때부터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점이 뒤늦게 부각되자 이순신은 이를 개량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순신 휘하의 군관 나대용이 거북선 개량의 장본인이라는 설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80년 동안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거북선은 후에 판옥선을 개량하여 이순신이 새로이 만들어낸 것이란 말이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거북선의 원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배와 배를 맞댄후 단병접전을 벌이는 왜병에 맞서 고려수군은 상체에 칼과 창을 잔뜩 꽂아놓은 창선을 개발하고 급기야는 선체를 완전히 덮은 거북모양의 배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기록의 공백이 있었다고 거북선의 개발에 공백기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 싶다.
거북선의 모양을 짐작하게 만드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는 선조수정실록, 영조실록, 순조실록에 전한다.
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 선조 수정실록
“지난 겨울에 별군직(別軍職) 윤필은(尹弼殷)이 상소하여 전선(戰船)의 제도를 바친 것으로 인하여 신이 왕명을 받들고 이삼(李森)과 더불어 전선과 거북선[龜船]을 개조하였는데, 전선의 2층 위에 장식이 너무 무거워서 바람을 만나면 제어하기가 어렵겠으므로 위층의 방패(防牌)를 별도로 제도를 만들어서 때에 따라 눕혔다 세웠다가 하고, 선두(船頭)에는 곡목(曲木)을 덧붙여서 그 모양이 마치 오리의 목과 같으나 조금 뽀족하여 비록 풍랑을 따라서 나가더라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주 빠르며, 혹시 암석에 부딪히더라도 곡목이 먼저 파손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합니다.” - 영조실록 형조판서 장붕익의 건의
“신이 전선(戰船)과 귀선(龜船)의 제도를 상세히 보았더니, 전선은 매양 개조(改造)할 때마다 그 몸뚱이가 점차 길어져 결코 운용(運用)하기가 어렵고 귀선에 있어서는 당초 체제(體制)는 몽충(艨衝)12180) 과 같이 위에 두꺼운 판자를 덮어 시석(矢石)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신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기록한 바를 보았더니, 귀선의 좌우에 각각 여섯 개의 총(銃) 쏘는 구멍을 내었는데 지금은 각각 여덟 개의 구멍을 내었으니, 거북선이 종전에 비해 지나치게 커진 것을 또한 알 수가 있으므로 개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영조실록 영남 균세사 박문수
그 모양이 거북같이 생겼는데, 1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 없이 바다에 떠다니는 것이 마치 거북이 떠 있는 것 같으며, 입과 코에서 연기가 나오므로 지금도 표류(漂流)해 온 왜인(倭人)이 이를 보면 서로 놀라서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을 사로잡는 기계이다.’라고 한다 합니다. - 순조실록 전 통제사 이당의 보고

구끼의 기록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우세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북선을 본 딴 철갑선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잠시 뒤 얘기하겠지만 조선전함과 일본전함은 그 근본부터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서는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2편에 언급할 예정) 그렇다면 거북선 또한 선체를 철로 제작하지는 못해도 철갑을 곁에 입혔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물론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거북선의 전략적, 역사적 가치가 뒤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세계 최초에만 매달려 있을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