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24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전선(戰船)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일본수군의 해전전술은 옛날부터 이어져 오던 방식에서 변하지 않은 채였다. 일본수군은 배를  접근시켜 병사들이 상대방 배로 뛰어오르는 단병접전을 즐겨 사용했으며 조총의 보급으로 그나마 예전보다는 수군의 원거리 공격무기를 좀 더 충실히 갖출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일본도 미약하게나마 대포주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일본수군은 왜 대포를 활용하지 못했을까?

조선수군의 주력인 판옥선과 비슷한 크기인 일본전선의 주력 층루선은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내구력은 형편 없었다. 조선의 배가 나무못을 이용하거나 나무와 나무를 맞물려 견고히 만든 반면 일본의 배들은 송판과 쇠못을 이용해 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포를 싣고 쏘면 그 반동으로 인해 자칫 배가 파손되어 버린다.

-층루선

층루선은 중국에서부터 비롯되어 우리나라를 거쳐 예부터 이어져 오던 전선의 방식이었는데 이를 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안택선이다. 안택선(일본에서는 아다케라고 일컫는데 그 의미는 불확실하다.)은 일본의 전선들 중 제일 크기가 컷으며(그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일본장수들의 기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본의 안택선은 주로 배위에 누각을 세운 후 지휘관이 그 위에서 각 전선을 통솔하였는데 구조적인 취약성 때문에 비슷한 크기의 판옥선이 돌진해 오기라도 하면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그나마 안택선은 일본군의 주력 전선도 아니었다.

-1714년에 신송원에 기증된 안택선 모형. 일본인들의 미니머처에 대한 관심은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대포가 해전에서 위력적임을 실감한 일본군은 원래 많아봐야 배 한척당 1~2문만 형식적으로 운용되던 대포를 궁여지책으로 늘여 사용하기에 이르는데 반동으로 인해 배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위해 대포를  줄로 매어다는 방식을 이용한다. 이렇게 하면 배의 파손이 방지 될지는 모르나 정확성과 파괴력은 훨씬 더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발견된 조선전역 해전도 중 일부. 일본 수군의 매어다는 대포

그나마 일본전선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주력함 세키부네(關船 관선)는 판옥선보다 훨씬 크기가 적고 낮기까지 해 접근전을 펼치더라도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공격을 뒤집어 써야만 했다. 그렇기에 조선수군은 갈고리로 일본배를 끌어들인 후 화전, 총통, 대포를 퍼붇고 갑판위로 뛰어 올라 일본측 전선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조선의 전선은 각종 화기를 발사하기에 편리함을 감안한 구조로 되어 있고 대형 화약 병기 발사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바퀴달린 작은 포차(동차)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당시 일본의 조선술과 지휘관들의 이해력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일본 수군이 접근전 대신 조총 집중 사격을 위해 측면을 노출시키면 조선군에서는 전통적인 해전 방식인 당파전법, 즉 배를 돌진시켜 부딪혀 침몰시키는 전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정조 대에 작성된 각선도본(各船圖本) 판옥선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일본의 수군장 구끼는 안골포 해전에서 패전한 후 자신의 배를 부숴버린 대장군전과 장군전을 수거하여 가보로 삼은바도 있었다. 이 대장군전은 일본 규수 가라쓰성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과거  한차례의 언론보도 후 그 실체가 공개된 바는 없다. 들리는 말로는 오늘날 복원된 모습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대장군전과 장군전

대장군전의 발상은 오늘날의 함대함미사일인 하푼을 연상하게끔 만든다. 당시 명나라 수군은 '조선수군은 나무 기둥을 대포에 넣어 쏜다.'라고 비웃었지만 막상 그 위력을 보고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대장군전이 발사되어 일본배를 명중시키면 모든것이 부숴져 버렸다며 기록을 남기며  이를 수거까지해간 일본군이 이를 따라쓰지 못한 것은 선상 단병접전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일본수군의 진부한 전술과 낙후된 함선 건조 방식의 한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