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묘지 구멍의 비밀이 마침내 풀렸다고?! 실체를 추적하라


-무령왕 지석



-무령왕비 지석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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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두고 비밀을 풀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하지 않은가? 시라스 교수의 논문에 나온 얘기는 유력한 설일 뿐이지 확실한 증빙은 아니다. 그런데 연합뉴스는 '난제가 단칼에 풀렸다.' 는 국내 학자의 얘기를 싣고 제목마저도 비밀이 마침내 풀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에 '파천황을 방불하는 주장'이라는 말을 싣기는 했지만 그 말이 '놀라운 주장'이라고 바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주장이며 설일 뿐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금송으로 왕과 왕비의 관재를 사용한 점과 출토된 청동거울이 닌토쿠 일본왕릉에서 출토된 동경과 유사하다든가 하는 부분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령왕릉 발견당시 유물을 집어내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야 한다. 듣기로는 당시의 빈약한 고고학적 인식으로 인해 막 발굴된 무령왕릉에 기자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등 현장보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만약 오수전이 지석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이 가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오수전은 지석위에서 발견 되었다고 전하니 이 가설은 큰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

참고로 무령왕과 무령왕비 지석 뒷면에 있는 내용을 옮겨본다.


무령왕 지석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年六十二歲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倒乙巳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安  登冠大墓立志如左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 .


무령왕비 지석 뒷면

錢一萬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以前件錢訟土王 土伯土父母上下 衆官二千石 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不從律令

돈 1만문, 다음의 건. 을사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앞에 든 돈으로 토지신 토왕, 토백, 토부모, 연봉 2000석 이상의 여러 관료에게 나아가서 서쪽 땅을 사들여 묘을 만들었으니 문서를 만들어 남긴다. 현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