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27 조선은 왜 망하지 않았는가 (1)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동래순절도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동북아시아는 격변에 휩싸인다. 명나라는 농민출신인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해 버리고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여진족은 청나라를 세워 중국 전토를 장악한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의 어린아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내란 상태로 들어간 후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확립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존 지배층이 바뀌지 않은 곳이 바로 조선이다.

이 시기, 즉 17세기 초의 상황은 단순히 전쟁으로 인한 피폐함 외에도 후세 일부 기후학자들이 '소빙기'로 분류할 만큼 세계적으로 저온현상이 빚어져 지속적인 흉작이 이어졌다. 어떤 학자는 이 시기를 전후해 임진왜란, 유럽의 30년 전쟁 등이 일어난 것은 국가재정의 어려움을 외부로 돌리려는 정책적인 상황이 빚어낸 결과라고 까지 이야기하나 조금은 비약으로 보이는 설로 여겨진다. 참고로 소빙기는 1500년부터 1750년까지로 여겨지고 있다.

더구나 임진왜란 기간 중에는 페스트로 추정되는 전염병마저 돌아 '전쟁으로 죽는 백성들보다 돌림병으로 죽는 백성이 많았다.'라고 할 정도로 참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왕조가 그대로 이어져 간 것은 드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존 체재에 도전한 모반사건은 임진왜란중에도 발생되었다.

먼저 임진왜란 기간 중 기존체제에 도전한 대표적인 사건으로서 '이몽학의 난'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이몽학의 난은 이몽학의 야심에서 비롯되었다. 농토의 감소와 이상기후로 인한 대기근이 일어나자 이몽학은 굶주린 농민을 선동하여 왜적의 재침을 막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대의명분과 함께 서울로 진군한다.

이몽학은 왕실의 종친이기에 어느 정도 신분상의 명분도 갖추고 있었다. 초반에 충청도 홍산, 정산, 청양 세 현을 연이어 함락시키며 기세를 떨치던 천여명의 이몽학 반란군은 홍주목사 홍가신의 방어와 이어진 관군의 습격에 놀란  반란군이 흩어지고 결국 반란에 가담한 자들이 이몽학의 목을 베어 항복해 온 것으로 쉽게 종결된다.

모반이라고 부르기는 부족하지만 임란초기에는 안수와 송유진이 의적이라 일컬으며 그 세를 삼천여명이나 규합하고서는 충청도 공주, 청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결국 그들은 조정에 의해 모반세력으로 간주되어 의병장 유의신이 이끄는 관군에 토벌된다.

(계속)



덧글

  • 잡탕 2007/09/16 21:08 #

    딱딱하던 역사 잘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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