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28 조선은 왜 망하지 않았는가 (2)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김덕령 장군 의복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당시 조정에서는 자율적으로 조직된 의병들을 체제 내로 편입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의병장들 중 상당수가 양반이라는 점은 그나마 유교적 가치관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이런 작업이 수월했지만 앞서 얘기한 김덕령 같은 경우는 이런 체제 내로 넣기에는 너무나 위험 인물로 지목 되었기에 누명을 씌워 처형시킨 것이었다. 역사에는 신경행이란 사람의 무고로 인해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썼다고 되어 있지만 조정에서 제대로 조사도 해보지 않은 것은 분명히 이런 음모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사회장악력은 현재의 기준으로 생각해볼 때 아주 허술하리라 여길 테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곽재우가 말년에 모든 벼슬자리를 거부하면서 이순신이 죄 없이 잡혀 올라오고 김덕령이 처형된 사실에 통탄한 것은 단순히 정의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적의 위협이 없어지자 그간 중용했던 다루기 어려운 대상을 제거하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분위기에 환멸과 동시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는 분명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몇몇 의병장들이 백성의 신망을 얻자 '전쟁영웅의 야심'을 미연에 방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당대에 벌써 '이순신 자살설'이 나올 정도였던 것이었다.

전란이 일어나자 양반은 도망가고 궁전은 왜적이 침입하기 전에 노비들의 손으로 불태워졌으며 농민들이 스스로 의병에 가담한 분위기는 지배계층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어떤 촉발제만 있다면 기존 사회체제는 말 그대로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성리학적 가치관을 앞세우며 어쩌면 사회체제를 뒤집을 만할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재를 없애면서까지 안정을 꾀한 것이 바로 이 시기에 조선왕조가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던 편법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피지배 계층의 의식은 어떠했을까? 잠깐 우리나라 전 지역에 퍼져 있는 '아기장수설화'를 보자. 지역마다 차이가 약간씩 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태어나자마자 엄청난 힘을 가진 아기장수가 있었다. 부모는 이를 나라에서 알고 반역수괴의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할까 두렵게 여겨 자식을 죽이려 했다. 마침내 어떤 약점(겨드랑이에 돋아난 비닐을 뗀다던가, 날개를 없앤다던가 하는)을 알아내 아기장수를 죽였다...'

이 설화를 보면 유교적 가치관이 일반 민중에게도 뿌리깊게 내려있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점도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안정이란 측면에서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발전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장애요소였다. 이후 이괄의 난, 홍경래의 난 등 국가체제에의 도전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기존체제에 기댄 안정만을 원하는 민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점차적으로 유교적 절대주의가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 현재 우리가 오래된 전통이라고 믿고 있는 남존여비사상, 복식, 생활 가치관등이 영, 정조대에 이르러 굳건히 정립되게 된다.

아니할 말로 그때 바뀌었어야 할 체제가 지속되어 병자호란을 당하고 이백년 후 다시 일본의 침입을 받아 나라를 뺏기는 수모를 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혹시 현재의 우리도 알게 모르게 기득권만이 지키고 싶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