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29 임진왜란 그 후, 삼국의 작은 이야기(1)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조선

임진왜란 이후 지배층은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교적 가치관 학습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 그로 인해 여성들의 권리까지 상당히 축소되었고 성리학적 가치관은 경직되어 간다.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이후에는 이러한 가치관이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효종 때는 북벌정책으로 백성들의 관심을 전쟁으로 돌려 통치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렇게 경직되어 있지만 효과적인 유교적 통치정책은 잠시나마 민중의 관심을 체제에 대한 도전에게 돌리게끔 해 준다.

이런 영향인지 임진왜란 이후에는 사설시조, 판소리 같은 대중적 문화장르가 활성화되기도 한다.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고추의 유입으로 인한 음식의 혁명을 꼽을 수가 있다. 원산지가 중앙아메리카인 고추는 임진왜란때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통설이 유력하며 당시에도 왜개자((倭芥子), 또는 왜초(倭椒)라고 불렸다. 이 사실은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재미있는건 거꾸로 일본의 '대화본초'등 여러 문헌에서는 고추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유학자 가이바라 에키켄(1630~1714)이 1709년에 쓴'야마토 혼조' 로서 이에 따르면 일본에서 고추가 없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선에서 고추씨를 가져왔기 때문에 고추를 ‘고려후추’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들을 두고 고추가 중국을 통해 유입되었다는 북방설과 포르투갈에 의해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파되었다는 남방설이 대치되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 음식을 오래 보관하고 맛을 내는 대중적인 향신료가 부족한 형편에서 조선에서는 고추를 크게 활용하였고 이는 음식 혁명으로 이어졌다. 향신료로서 후추도 당시에 있긴 했지만 워낙 귀하고 비싼터라 일부 부유층만이 부의 상징처럼 통후추를 몸에 지니며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기에 더욱 그러했다.(여담이지만 본래 후추를 '고초'라고 불렀다. 하지만 고추가 유입되면서 후추가 이 이름을 빼았긴 것이 고추의 어원이다.) 또한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역시 신대륙이 원산인 담배와 호박도 유입되었으며 이것들은 조선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