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야기 - 30 임진왜란 그 후, 삼국의 작은 이야기(2) 임진왜란이야기+역사이야기

-만리장성의 시작, 산해관

일본의 하나비

임진왜란 이후 한 차례의 내전을 거쳐 에도막부시대가 열린 일본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각 영지에 있던 무사들의 세력을 축소하고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기에 그간 각 무사들 휘하에서 기술자들에 의해 대량 제조되어 왔던 화약무기의 수를 대폭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과 명과의 전투로 인해 개선의 여지가 있던 대포는 거의 만들지 조차 않았고 조총은 1년 생산량을 수십 정으로 줄이며 국가에서 생산량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는 화약무기 제조 기술자들의 실직을 초래했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페리호가 일본을 향해 함포외교를 펼칠당시에는 이에 맞서느라 구식대포를 부랴부랴 주조할 정도였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이 기술자들은 힘없는 무사들 휘하를 떠나 생계를 위해 민간에서 불꽃놀이용 화약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일본인들이 넋을 놓고 구경하고 하는 불꽃놀이 하나비의 유래다. 화약을 다룬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막부가 엄격하게 단속을 했으나 하나비에 대한 백성들의 인기가 높자 오히려 국가에서 장려하는 축제로 발전시키게 된다.


중국의 삼합회

유명한 비밀결사조직으로 영화에 자주 나오기도 하는 중국의 삼합회는 명의 멸망으로 인해 비롯되었다. 당시 농민군을 이끌던 이자성은 명을 멸망시키고 북경을 장악하지만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청군에 협력하는 바람에 패주하게 된다.

이후 이자성의 행방은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지만 이자성을 지지하던 잔존 세력들은 한(漢)족 나라의 부흥을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 청나라에 저항하다가 동남아시아 화교들과도 뭉치게 된다. 바로 이때 조직된 비밀결사가 삼합회다. 현재도 홍콩과 마피아를 중심으로 이 조직은 존재하고 있으며 신해혁명 이후에는 주요인물들이 쑨원과 손을 잡으며 이탈한 후 비밀결사라기 보다는 암흑가의 폭력조직으로 알려지게 되며 여러파로 나뉘기까지 한다.

 

덧글

  • 잡탕 2007/10/20 19:14 #

    야겜에서 자주보던 불꽃놀이에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삼합회도 이때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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