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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야기 - 31 (에필로그 ?)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당시 일본왕의 연호를 따서 분초쿠 게이초의 역(文禄・慶長の役 : 줄여서 문경의 역이라고 함), 중국에서는 만력조선(萬曆朝鮮)전쟁, 또는 '임진동정', 북한에서는 '임진조국전쟁', 사학자 이이화 같은 분은 '조일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단순한 명칭의 차이 같지만 이는 각각 해당자들의 입장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임진왜란 이야기 - 30 임진왜란 그 후, 삼국의 작은 이야기(2)

-만리장성의 시작, 산해관일본의 하나비임진왜란 이후 한 차례의 내전을 거쳐 에도막부시대가 열린 일본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각 영지에 있던 무사들의 세력을 축소하고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기에 그간 각 무사들 휘하에서 기술자들에 의해 대량 제조되어 왔던 화약무기의 수를 대폭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과 명과의 전투로...

임진왜란 이야기 - 29 임진왜란 그 후, 삼국의 작은 이야기(1)

조선임진왜란 이후 지배층은 자신의 과오가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교적 가치관 학습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 그로 인해 여성들의 권리까지 상당히 축소되었고 성리학적 가치관은 경직되어 간다.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이후에는 이러한 가치관이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효종 때는 북벌정책으로 백성들의 관심을 전쟁으로 돌려 통치권을 강화하는 ...

임진왜란 이야기 - 28 조선은 왜 망하지 않았는가 (2)

-김덕령 장군 의복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당시 조정에서는 자율적으로 조직된 의병들을 체제 내로 편입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의병장들 중 상당수가 양반이라는 점은 그나마 유교적 가치관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이런 작업이 수월했지만 앞서 얘기한 김덕령 같은 경우는 이런 체제 내로 넣기에는 너무나 위험 인물로 지목 되었기에 누명을 씌워 처형시킨 것이었다. 역사...

임진왜란 이야기 - 27 조선은 왜 망하지 않았는가 (1)

-동래순절도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동북아시아는 격변에 휩싸인다. 명나라는 농민출신인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해 버리고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여진족은 청나라를 세워 중국 전토를 장악한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의 어린아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내란 상태로 들어간 후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확립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동북아시아...

임진왜란 이야기 - 26 이순신 자살설의 배경(2)

-천자총통전쟁영웅의 야심은 처음부터 펼쳐지기 보다는 그 전공으로 대중의 신임을 얻었을 때 서서히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체제밖의 의병장이었던 김덕령은 조선조정으로서는 분명히 '양날의 검'이었을 것이다. 이런 김덕령을 존경해 왔던 이민서는 체제순응적 이었지만 조정에 의해 핍박도 많이 받았던 이순신 장군을 두고도 김덕령과 같은 맥락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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